등록금을 받아 학생교육에 제대로 쓰지 않고 막대한 적립금만 쌓아온 대학교에 책임을 묻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수원대생 50명이 학교법인과 이사장, 총장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하고, 학생들에게 각 30만~90만원씩 등록금을 돌려주도록 했다. 재판부는 대학이 적립금과 이월금을 과도하고 부당하게 운용하면서 등록금 액수에 비해 현저히 질 떨어지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보았다. 이는 적립금을 장학금 등 학생복지와 교육시설 개선에만 쓰도록 한 사립학교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등록금으로 적립금만 쌓고 학생들에게는 그만큼의 교육가치를 돌려주지 않는 일은 이 대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대학가에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가 등록금 인상을 강력하게 억제해 왔음에도 2008~13년 5년 간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적립금은 30% 가까이 급증, 무려 9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증가분 중에도 등록금으로 조성되는 교비회계 적립금이 대부분이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고스란히 대학 곳간에 자산으로만 쌓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립금을 3,000억 원이나 쌓고도 형편없는 학생복지와 교육여건으로 지난해 교육부가 사실상의 ‘부실대학’으로 지정한 청주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국의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은 무려 14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지키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이 거의 학부모에게 의존하는 대학등록금이다. 이 때문에 민간 부담률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정부 부담을 늘려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학의 적립금만 제대로 활용해도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거나 심지어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판국에 유수대학의 총장들이 지난 주말에 모여 “등록금 동결 탓에 대학재정위기가 심각하다”며 등록금 자율화, 입학정원 폐지, 기여입학제 허용 등 더 돈 벌 수 있게 해달라는 동떨어진 요구를 정부에 해댔다. 대학이 교육의 공공적 가치와 책무를 외면하고 온통 상업적 이윤 확충에만 매몰돼 있다고 늘 비판 받는 이유다. 대학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정부에도 감리강화책을 포함해 사립대 재정운영의 적정성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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