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는 아시아 보편적 화두
동남아 국가들 경제지원 받으려 피해 얘기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종군위안부가 공창제에서 일한 매춘부일 뿐이란 주장에 동조한 사람입니다.”
오는 29일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이 예정된 가운데 일본의 대표적 위안부 문제 권위자인 니시노 루미코(西野瑠美子ㆍ63)씨가 이처럼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는 26일 도쿄에서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과거 ‘워싱턴포스트’ 등에 위안부 역사를 왜곡하는 광고를 실었던 우익들과 동조해온 사실을 강조했다. 2007년 6월14일 워싱턴포스트엔 ‘일본역사사실위원회’ 명의의 단체광고가 실렸고, 2012년 11월4일 ‘스타레저’지에서 같은 주장을 편 광고가 재등장했다. 이때 아베 총리는 동조자 명단에 자민당 소속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인정되던 매춘시스템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다수는 장교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인신매매라고 표현한 미 하원의 결의는 역사왜곡”이란 주장도 실렸다. 아베 총리는 그러고도 지난달 27일 워싱턴포스트에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라고 했다.
이처럼 분개하는 니시노씨는 ‘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VAWW RAC)’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최근 ‘일본인 위안부’란 책을 발간했다.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한일충돌의 원인이란 시각에서 벗어나, 일본에서도 피해가 심각했던 보편적 화두임을 일깨우려는 취지다.
-일본인 출신 위안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본에선 유곽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많이 끌려갔고 한국에선 가난한 집 처녀들이 많이 끌려갔다. 식민지 억압상태였던 조선에서 여성들을 모았다는 게 중요하다. 차별구조를 명확히 하려는 게 책을 낸 이유다. 일본 우익들은 유곽출신 매춘부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잘못됐다. 위안소 안의 강제적 구조는 물론 여성인권이 침해됐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조선출신과 일본출신은 어떻게 달랐나.
“위안소 안에서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간 차이가 있었다. 위험한 전선엔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가 보내졌다. 일본여성은 장교를 상대한 반면 조선출신은 수많은 일반병사를 대했다. 일본여성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귀국할 수도 있었다.”
-한국인 위안부는 강제연행 된 것인가.
“처녀들이 많았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여성들을 일본에 가서 잡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모은 뒤, 실제론 위안부 일을 시킨 사례가 많다. 지역 순사들이 강제로 끌고 간 경우가 더러 있었다. 업자에 속아 팔려간 인신매매가 많은데 누가 업자에게 돈을 줬는지 연결고리가 매우 중요하다. 군이 군사비밀 명목비용으로 위안부 모집 돈을 지불했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명령하달 계통구조가 중요한데 업자책임으로 돌리는 건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강제연행 분위기는 어땠나.
“한국땅이 식민지였기 때문에 일왕을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고 몰아쳤다. 납치만 강제연행 케이스로 보면 안된다는 게 중요하다. 속인다든지 돈을 많이 번다고 유혹한다든지 모두 당시 형법상으로도 유괴죄에 속한다. 속임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지로 갔다고 볼 수 없다. 유곽에 있다 따라가길 거부한 일본여성들이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가야 한다는 강요가 있었고,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묻힐 수 있다는 말도 이용됐다. 책의 부제목을 ‘애국심과 인신매매’로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정부 주장대로 ‘협의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문서가 없나.
“실제론 굉장히 많이 나왔지만 일본매스컴에서 보도를 안한다. 1993년 고노담화 이후 관련자료들이 많이 나왔다. 인도네시아의 위안부 관련재판 과정에서 나온 것들도 있고, 도쿄의 B급, C급 전범재판 때 이미 강제연행 자료가 다 나왔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은 부인한다.”
-아베 총리가 아시아ㆍ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깊은 반성’을 간접적으로 말했는데 한국과 중국만 반발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혼네(본마음)을 얘기하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침략을 당하고도 경제지원이 필요해 위안부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아베 정부는 위안부를 한국과 중국 문제로 전환시켜 국내에서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것이다.”
-‘반성’과 ‘사죄’는 무슨 차이가 있나.
“사죄는 그 반성이 진짜인지 가늠할 증거가 된다. 그것은 말로 함으로써 상대에 전해질 수 있다. 지금 아베 총리는 모순되는 얘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2007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위안부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느낌(sense of apology)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 부시는 위안부가 아니다. 당사자에게 직접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더 이상의 사죄는 필요 없지 않냐’는 말은 아베가 아니라 피해자들이 할 말이다. 그는 전쟁책임이란 패전책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니시노씨는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1990년대 초반부터 이 문제에 몰두해왔다. 미얀마와 중국 국경지대에서 미군이 촬영한 이른바 ‘임신한 위안부’사진의 당사자가 북한에 거주하는 박영심씨(2006년 별세)란 사실을 처음 발굴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강제동원된 피해자 사진과 문서자료, 증언이 동시에 일치한 첫 사례였다.
그러나 니시노씨는 사무실 위치도 드러내지 못할 만큼 우익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이날 인터뷰 때도 위치정보가 들어나지 않도록 신신당부 했다.
-우익의 테러위협이 어느 정도인가.
“여성문제로 국제적 활동을 해오면서 사무실을 폭파하겠다는 전화를 수없이 받았다. 단체이름도 바꾸고 주소도 노출되지 않게 하지만 협박전화와 이메일이 끊이지 않는다. ‘매국노’‘그러고도 일본인이냐’‘북한 공작원’같은 욕을 하는데 요즘에 급증하는 ‘비(非) 국민’이란 험담이 내포하는 의미가 크다.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을 벌일 때 유행하던 말인데 일본사회가 전쟁 당시로 회귀한 느낌을 받는다. 큰 일이다. 우리는 정치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위안부 문제가 정당하게 해결되는 게 일본의 진정한 민주화 달성에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 쪽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에 집중하지 않고 국가간의 문제로만 방치하면 ‘100년간의 투쟁’으로 길어진다. 한국사회 일부에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멸시적인 감정이 남아있다. 항일운동은 영웅으로 받들면서 위안부 피해자는 ‘왕따’시킨 사례를 많이 들었다. 독립운동 유족단체에서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급으로 다루지 말라며 태평양전쟁 위안부 위령비를 세우는 걸 거부한 적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이면서도 다르게 취급되는 부분을 할머니들은 가장 괴로워하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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