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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선거제도 개혁 없인 복지국가 없다

입력
2015.04.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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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표 1가치' 원칙 불구 지난 총선 새누리당과 진보당 표 가치 3배 차

계급배반투표는 사실과 달라 근본 원인은 가난한 사람의 이런 표 저평가

완전비례제 선관위 제안 바로 실현 가능하려면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링컨은 “표탄은 총탄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는 격언을 남겼다. 영어로 투표용지(ballot)와 총탄(bullet)은 자음이 같고 모음만 달라서 운율이 맞는다. 그래서 투표용지 대신에 ‘표탄’이라고 번역했다. 나는 선거 일 주일 전이 되면 항상 학생들에게 이 격언을 알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가 대학생 등록금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유를 아세요? 대학생들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문명화된 전쟁이다. 야만적인 상태에서는 의견이 다를 때 총탄으로 결정을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총탄 대신 표탄으로 결정한다. 노예제를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무상급식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너무 다르다. 이럴 때 모든 사람이 한 표씩 표탄을 가지고 결정을 하자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그러나 한 표씩의 표탄을 나누어주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늘어나는 표탄을 나누어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줄어드는 표탄을 나누어 준다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우리 헌법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국회는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여기서 보통선거는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뜻이고 평등 선거는 1인당 한 표씩을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1인당 한 표씩 주는 것은 형식적인 평등에 불과하다.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10만 표마다 한 석을 주는데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20만 표마다 한 석을 준다면 평등한 선거라고 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선거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한 표가 의석을 만들어 내는 데 동일한 역학을 해야 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평등 선거의 개념을 형식적인 1인 1표 이상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평등 선거란 투표의 수적 평등, 즉 1인 1표의 원칙(one person, one vote)뿐만 아니라 성과가치의 평등, 즉 1표의 투표가치가 국회의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정도에 있어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1표 1가치의 원칙(one vote, one value)을 의미하는 것이다.

독일 헌재는 성과가치를 정당의 의석비율을 정당의 득표율로 나눈 값을 가지고 측정한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80%의 득표율을 가지고 50.67%의 의석을 차지했다. 성과가치가 1.184가 된다. 득표율보다 18.4%만큼 의석을 더 차지한 것이다. 이에 반해 통합진보당은 10.30%의 득표율을 가지고 4.33%의 의석을 차지했다. 성과가치가 0.421이다. 득표율보다 57.9%만큼 의석을 덜 차지했다. 어떤 유권자의 1표는 1.184표의 가치로 평가되었는데 다른 유권자의 1표는 0.421표의 가치로 평가된 것이다. 독일 헌재는 2009년 선거 결과 기독민주연합당의 성과가치가 1.118가 되어 기준에서 11.8%만큼 어긋나자 위헌으로 결정했다. 기준에서 50%도 넘게 어긋나는 우리 선거는 두말 할 여지도 없는 불평등 선거이다. 특히 통합진보당, 민주노동당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당 지지자들의 투표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 선거는 1명을 뽑기 때문에 모든 유권자들의 성과가치를 동일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 그러나 국회의원 선거는 수백 명을 뽑기 때문에 얼마든지 동일하게 만들 수 있다. 평등하게 만들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안 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다.

지난 2월 선관위는 획기적인 선거법 개정 의견을 제안했다. 선관위는 정당의 전체 의석수를 정당득표율에 따라서 배정하자고 제안하였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정당의 전체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수를 뺀 값으로 한다. 이렇게 하면 정당의 전체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완전히 비례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비례제라고 부를 수 있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비례대표 의석만 정당득표율에 비례하는 부분비례제다. 불평등한 부분비례제를 평등한 완전비례제로 바꾸자는 것이 바로 선관위 제안의 핵심이다. 선관위 제안에 따라 19대 국회의원 의석을 배정한다면 모든 정당 지지자들의 성과가치가 기준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10% 이내가 된다.

선관위 제안에는 한 가지 개선할 점이 있는데 국회의원 수를 300석으로 하면서 지역구를 200석으로 하자는 부분이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보다 지역구를 50석 가까이 줄여야 한다. 선거가 1년 남은 시점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만약 지역구를 못 줄이면 비례대표를 50석 정도로 줄여야 할 텐데, 이렇게 되면 여당이 당론으로 정한 석패율제도 도입하기 어려워지고 무엇보다 초과의석이 많이 생겨서 평등 선거에서 어긋날 가능성이 높다. 심상정 대표가 360석을 제안하고, 문재인 대표가 400석을 제안하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500석(1인당 세비를 1억4,000만원에서 7,800만원으로 줄이는 조건)을 제안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민들 사이에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구가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1인당 세비와 특권을 줄이면서 수를 늘려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수십 조의 세금이 낭비된 것은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가 늘어나면 권력이 줄어들고 경쟁이 활발해지는 것이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수가 적을수록 독점이 되고 권력이 커진다.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할수록 기득권층에 유리해진다. 독재자가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의 하나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인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흔히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대표하는 정당에 투표하기 때문에 가난 문제가 해결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런 계급배반투표 가설은 대개 부정된다. 연령이나 지역의 특성이 소득의 특성과 혼동되어 나타나는 결과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를 낮게 평가하는 데 있다.

김낙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소득이 포착된 3,122만명의 중위 소득이 연간 1,074만원이라고 발표했다. 김유선 소장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이 많은 데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법이 잘 안 만들어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를 불평등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거 제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1.2배로 늘어나는 표탄을 나누어주면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0.5배로 줄어드는 표탄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래서는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 경제 불평들을 교정하는 수단이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경제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다. 넘쳐나는 노숙자, 심각한 청년실업을 생각하면 더 이상 정치 불평등을 묵과하면 안 된다. 우리는 미국 독립운동 때 같이 외쳐야 한다. “나에게 평등한 투표권을 주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시오.”

강남훈 혁신더하기 연구소장ㆍ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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