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 문제 발생 대비한 보증금
계약 명시 안해 42% 제때 못받아
해외건설 공사에 참여한 하청업체 A사는 매월 기성대금(공사과정에서 현재까지 완성된 정도에 따라 지급하는 공사금액)의 10% 이상을 못 받았다. 원청 사업자 B사가 공사 도중 이상이 생길 것을 우려해 일부 금액의 지급을 공사 완료 이후로 미룬 것이다. A사가 하자가 발생할 경우 책임지겠다는 내용을 명시한 ‘하자보수보증서’를 발급했음에도 소용없었다. 사업을 발주한 발주처도 B사에게 똑같은 이유로 10%를 떼고 대금을 지급해 자금 여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공사 계약서에는 명시하지도 않은 채 대금의 일부를 공사가 모두 끝난 뒤 지급하는 ‘공사대금 갑질’로 인해 하도급 업체인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기공사업체와 건설업체 242곳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과 거래 시 ‘유보금’이 설정됐던 경험을 물었더니 그렇다는 응답이 42.1%로 나타났다. 유보금은 시공상 하자가 발생하면 하청업체(중소기업)가 보수하도록 하는 방편으로, 공사가 모두 끝난 후에 원청업체가 지급하는 대금을 뜻한다.
문제는 유보금 설정 경험이 있는 업체 중 계약서상에 유보금을 명시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88.2%)이라는 것이다. 계약할 때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공사가 시작되면 유보금으로 하청업체를 압박하는 ‘갑질’을 일삼는다는 뜻이다.
유보금 설정규모는 전체 계약금액의 ‘5% 미만’이 73.5%로 가장 많았고, 유보금 지급시기는 공사 완료 후 6개월 이내 지급받는 경우가 대부분(84.3%)이었다. 유보금은 대게(84.3%) 전액 지급받지만, 유보금마저도 전부 받지 못하는 경우가 15.7%나 됐다.
그 결과 중소기업들은 협력업체 대금결제 지연(49.0%), 재무구조 악화(33.3%), 연구개발(R&D) 설비투자 기회 상실(5.9%), 사업 기회 상실(5.9%) 등의 고통을 겪는다고 대답했다.
유보금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67.4%로 높았지만, 반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10,3%)거나 ‘잘 모르겠다’(22.3%)는 응답도 상당수였다. 이런 불공정 관행을 알면서도 일거리를 받아야 하는 ‘을’의 입장이라 묵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보금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업체들은 그 이유로 ‘유보금 설정은 구두로 이루어져 적발이 어렵다’(36.0%), ‘거래단절이 우려된다’(20.0%), ‘행태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20.0%),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12.0%) 등을 들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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