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네개 달린 불개미'
천적없고 번식 왕성 기하급수적
매년 한번에 새끼 7~13마리 낳아
"2~3년내 수십배 늘어날 것"
10년 이상 장기적 연구 필요
위치 추적 예산조차 한때 끊겨
동태·지역적 특성 연구와 함께
생태통로 등 서식지 관리 중요
호랑이 늑대 같은 상위 포식자 소멸과 먹이사슬 붕괴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여러 생태계 교란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멧돼지다. 천적이 없어 숲 속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됐지만 왕성한 번식력에 따른 개체 수 증가를 숲이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과 멧돼지의 갈등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농작물 피해와 묘지 훼손, 빈번한 민가 침입 등 멧돼지 피해가 늘고 있는 것도 결국 도시화 등으로 서식지가 줄어 들고, 숲에서의 멧돼지 간 먹이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멧돼지는 얼마나 많은 것일까. 지난 2008년 환경부가 어림잡은 멧돼지 개체 수는 대략 27만 마리. 그간 얼마나 더 많이 늘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멧돼지의 적정 개체 수가 얼마인지에 대해 답을 내놓는 사람도 없다. 국립생물자원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멧돼지 서식밀도는 100ha 당 평균 4.3마리다. 동네 야산 면적에 멧돼지 4.3마리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서식밀도는 전국의 810곳(405곳씩 격년 조사)에서 멧돼지의 발자국, 배설물, 잠자리 등을 측정해 따진다. 하지만 멧돼지는 하룻밤에도 25㎞를 이동할 정도로 행동반경이 넓은 데다 계절, 시기별로 행동권, 서식지 이용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조사구역 흔적 조사만으로 따진 서식밀도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서식밀도 조사가 산악지역에서 실시돼 도심출현 및 피해에 대한 정확한 원인 파악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식밀도는 개체 수 증감 추이만 살펴볼 수 있는 지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내의 멧돼지 1호 박사인 김원명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임업연구관은 “과거에는 새끼를 많이 낳아도 그 만큼 많이 죽었는데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개체군이 자꾸 느는 구조가 됐다”며 “1년생 돼지가 새끼를 8마리씩 끌고 다니는 게 심심찮게 포착되는 걸 보면 2~3년 안에 수 십 배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8개월 이상 암컷이면 매년 새끼를 칠 수 있다. 한 번에 7~13마리를 낳는다. 12월부터 다음해 2월 사이 짝짓기를 하고 늦봄에 새끼를 낳지만, 먹이나 영양상태에 따라 아무 때나 번식할 수 있다. 요즘 멧돼지는 영양 상태가 좋아져 가을에도 새끼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발이 네 개 달린 불개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다. 밀렵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는 야생생물관리협회 김철훈 부회장은 “과거에는 멧돼지를 보호하려 수렵을 금했지만 이제는 너무 늘어나 20만 마리를 죽여야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씁쓸해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이 문을 열 당시 미국인이 기르던 멧돼지를 기증받아 전시할 정도로 귀했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몰렸지만 이제는 피해가 늘다 보니 개체 수 조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멧돼지를 잡아서 작년만큼의 피해만 입자는 게 목표”라는 말도 관계자들 사이에 나온다.
정상욱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계장은 “우리나라에 멧돼지가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많다’는 정도”라며 “그만큼 멧돼지에 대한 연구가 적어 어떻게 관리하고 조절해야 할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 자체가 부족하다. 인식도 돼 있지 않다. 2013년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가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와 멧돼지의 도심 출몰 이유를 밝히기 위해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진행한 행동특성 조사는 정부 예산이 끊겨 1년 만에 중단될 뻔했다가 민간기업의 후원으로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멧돼지 피해가 심각한 일본은 지역별 수렵 마리 수, 수렵날짜, 성별, 엽사 수 등 정보와 한배 새끼 수, 성별ㆍ연령 구조 등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개체 수를 산출해 내고 적절한 개체 관리와 피해대책도 마련한다. 우리처럼 서식밀도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하지 않는다.
멧돼지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실제 피해 예방 대책도 어설픈 경우가 많다. 일본의 멧돼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리의 대장 멧돼지가 민가로 내려올 때 다른 멧돼지도 따라서 내려온다. 이럴 경우 대장 멧돼지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실시했던 피해방지 방법 중 효과가 있었던 건 전기울타리였다. 하지만 농경지가 평평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경사면이나 숲 속에서도 작물을 키우기 때문에 전기 누전으로 효용성이 떨어졌다. 정 계장은 “외국에서 성공했던 방법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같은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도 멧돼지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매년 전국 10~20개 시ㆍ군에 수렵장을 열어 엽사 1인당 여섯 마리까지 사냥을 허용하고, 각 지자체도 봄, 가을에 유해조수 피해방지 구제단을 운영하고 있다. 때를 가리지 않는 멧돼지 피해 구제를 위해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꾸려진 기동포획단도 있다. 이렇게 포획된 멧돼지가 작년에만 4만 마리. 하지만 멧돼지의 기하급수적인 번식과 농가 피해를 감안하면 ‘언 발에 오줌누기’격이다. 한계도 여실하다. 이원일 야생생물보호협회 순천지회장은 “평소 생업을 가진 사람들인데 시도 때도 없이 신고는 들어오고, 아무 대가도 없다 보니 실제 현장에 나가게 되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멧돼지 피해 확산에 따라 전국적으로 포획이 늘어나면서 피해액이 수치상 줄어들었지만 주먹구구식이다. 개체 수 조절에 포획이 능사도 아니고 멧돼지 피해를 막을 수도 없다. 정상욱 계장은 “한배 새끼 수와 생존율, 사망률에 따른 멧돼지의 동태파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포획을 하다가는 나중에 종 복원을 한다고 헛돈을 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대안 가운데 멧돼지가 선호하는 서식지를 관리해 민가나 도심으로 내려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말농장, 전원주택, 재개발 등으로 인간이 기존 서식지를 침범했기 때문에 멧돼지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산 아래로 내려온다는 이유에서다. 김지영 동물자유연대 상임간사는 “생태통로를 만들거나 산에 먹거리를 두는 등 멧돼지의 서식지 관리 등 대안도 포획과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는 14곳에 생태통로가 만들어져 있지만 멧돼지 서식지에 존재하는 곳은 성북구 정릉동 1곳뿐이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와 서울대가 멧돼지의 위치추적을 한 결과 멧돼지 서식지와 등산로 대부분이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행성인 멧돼지는 낮에 주로 휴식을 취하는데 등산객들로 인해 불안정해지고 민가 출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우신 서울대 교수는 “멧돼지가 집중 분포하는 서식지의 등산로를 줄여 멧돼지의 이동경로를 확보하고 충분한 휴식처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3~4년 주기로 등산로를 변경해 최소한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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