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는 얼마나 위험할까. 야생생물관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서울 서대문구청 근처 주택가에 출몰한 멧돼지는 3~5m 거리에서 경찰이 쏜 총탄 9발을 맞고도 죽지 않아 마취수면제로 겨우 포획됐다. 단 한 발의 총탄도 멧돼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모두 멧돼지 가죽과 두터운 비계에 박혀있었다. 철갑 수준이다. 지난 12일에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출몰한 멧돼지 3마리가 경찰의 총에도 죽지 않아 결국 야생생물관리협회 소속 엽사가 칼로 숨통을 끊은 일이 있었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100근(60㎏)이 넘는 돼지는 권총 사살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멧돼지 머리뼈에 맞은 총탄은 튕겨 나온다. 급소인 귀 밑이나 심장을 적중시켜야 하는데 발이 빠른 멧돼지를 상대로 급소를 조준 사격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멧돼지 출몰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조차 어쩌지 못하고 야생생물관리협회에 도움을 요청한다. 엽사들이 사용하는 엽총의 경우 총탄의 총구 에너지가 3,400줄(J)로 권총보다 20배 이상 크기 때문이다. 이승용 야생생물관리협회 서울지회 사무장은 “경찰에게 제발 총을 쏘지 말라고 한다”며 “어차피 권총으로 사살하지도 못하고, 멧돼지의 화만 돋워봤자 사람에게 돌진하기 때문에 도심에서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멧돼지는 위협을 받으면 공격성이 극에 달하고 포악해진다. 입 위로 나온 10여㎝ 송곳니는 날카로운 칼 이상으로 위협적이다.
그런데 최근 경찰이 총기 규제 강화로 총을 내주지 않아 멧돼지 출몰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엽사들의 지적이다. 지난 2월 말 화성엽총 살인사건 이후 서울의 경우 엽총 사용허가를 받은 엽사가 단 한 명이다. 도심 곳곳에서 떨어지는 멧돼지 신고에 한 명의 엽사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야 할 실정이다. 이승용 사무장은 “아파트 단지, 학교 운동장 등 어디든 멧돼지가 나타날 수 있는데 아무 대책 없이 경찰은 총기 허가를 막고 있어 시민 안전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에서만 이틀에 한 번 꼴로 멧돼지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주로 북한산의 구기동, 평창동, 정릉동, 진관동, 우이동과 북악산의 부암동, 삼청동, 성북동, 명륜동에서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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