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2010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뒤 바로 아시아 순방에 나서자 워싱턴 정가가 들끓었다. 뒷수습 하기도 벅찬데 대통령이 도피성 외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백악관의 답변은 “오래 전 확정된 대형 외교행사들이기 때문에 이를 국내정치와 연관 짓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일본에서는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 굵직한 외교행사에서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 쟁점 타결에 실패했고, 중국에는 위안화 개입을 손보겠다고 별렀다가 오히려 신흥국들로부터 약달러 정책에 대한 비난 공세에 시달렸다. 빈손 귀국한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더 큰 정치적 곤욕을 치른 건 물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1주기, 성완종 파문 와중에 중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선 것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미 잡혀있던 외교일정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나라를 비운 사이 서울에서는 세월호 인양과 특별법 시행령 논란, 이완구 총리 사퇴 여부 등으로 정국이 연일 소용돌이쳤다. 밖으로는 일본의 끊임없는 과거사 도발과 미일 안보유착으로 우리의 외교ㆍ안보 입지가 위축되는 상황이 계속됐고, 아시아ㆍ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에서는 영토ㆍ과거사 문제로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얼굴을 맞대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다음달 열리는 러시아 70주년 전승기념일에는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러가 점쳐지면서 북러의 결속이 한반도 정세의 새 변수로 등장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국내문제는 차지하더라도 이런 숨가쁜 한반도 주변 외교안보 현장을 제쳐둔 채 대통령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 것이 맞느냐는 의문을 갖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더욱이 중국, 일본보다 이해관계가 더 첨예하게 얽혀있는 당사자인 우리가 오히려 방관자인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2년 평가에서 우리 외교는 다른 분야보다 좋은 점수를 얻었다. 미국, 중국과는 ‘균형외교’, 일본, 북한에 대해서는 ‘원칙외교’를 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과거사와 안보 가릴 것 없이 미일 유착이 확대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상징되는 한미중의 안보갈등이 노출되면서 우리 외교는 가장 험난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년 전 윤병세 외교장관은 북한에 대해 연일 초강경 메시지를 쏟아냈다. 유엔 연설에서는 “핵실험으로 도전할 경우 가장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고, 유럽연합(EU) 고위 대표에게는 “북한문제로 더 이상 시달리지 않도록 새로운 형태의 강력한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남북문제는 달라지지 않았고, 북한은 여전히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고 도덕적 우위만을 강조하는 메가폰 외교에서 1년 전의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안보인식이 하등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한 것을 두고 ‘다자적, 제한적 개입주의’라는 오바마 독트린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방주의를 버리고 대화와 외교를 앞세운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원칙과 이념보다 국익과 실현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란의 테러지원 활동과 인권탄압에는 눈을 감고 제한적이나마 핵능력을 저하시키는데 초점을 둔 협상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쿠바와의 관계정상화도 마찬가지다. 취임 직후인 2009년 이슬람과의 화해, 핵 없는 세상을 천명하며 이념과 원칙에 입각한 외교를 천명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얼마 전 에드워드 루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오바마가 키신저의 현실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 한 것은 미국 외교가 그만큼 교묘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미국이 일본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묵인하고 되레 일본의 안보팽창을 독려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원칙외교, 도덕외교만으로는 국익을 관철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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