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펄쩍 뛰며 부인하라. 거짓말은 정치인이 최고로 치는 생존술이다. 적반하장도 필수다. 참 편하다. 기대 수준이 바닥이라서다. 자살할 이유가 없다. 총리처럼 튀지만 않으면 된다.
“지저분해 보이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서도 배울 점은 있지 않을까? 그건 정치인의 생존 기술이다. 일단 펄쩍 뛰며 부인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리스트’의 등장인물 8명 중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부인했다. 우리 사회 평균으로 보면 ‘마음 약한’ 한두 명은 인정할 법도 한데 말이다. 역시 정치인이 돋보이는 것이다. (…) 이들에 의하면 망자(亡者)가 된 성씨는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해온 사람처럼 됐다. (…) 그가 죽음을 걸고 작성한 ‘리스트’에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은 분명하지만 그 때문에 리스트가 ‘사실’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부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자신이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지위와 명예를 한낱 ‘정직’과 바꿀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그런 바보 같은 판단을 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이번에 증명됐다. 일단 부인하고, 양파 껍질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말을 바꾸는 게 생존 기술이다. 내일 밝혀지더라도 오늘은 부인하라. 이걸 모르면 한국에서 정치를 모르는 것과 같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국민은 정치인의 거짓말에 관대하다. 시일이 지나면 ‘그게 언제였더냐’며 잊게 되고, 선거 때가 되면 다시 그들에게 표를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거짓말을 따지기 시작하면 아마 이 땅에 찍을 정치인이 없어질지 모른다.”
-정치인의 生存 기술(조선일보 기명 칼럼ㆍ최보식 선임기자) ☞ 전문 보기
“압도하는 능력으로 실패를 몰랐던 이 총리에게 최후의 좌절을 안겨 준 것은 거짓말과 부정이었다. 능력과 자질보다 더 귀중한 덕목인 정직과 겸손, 청렴성의 부족이 결국 인생의 화룡점정을 방해했다. (…) 정치에는 거짓말이 필요충분조건처럼 따른다. 공직에 만족하지 못한 그의 정치 인생 20년 동안 거짓말이 판을 치는 오염된 정치판의 물이 든 셈이다. (…) 경우야 다르지만 이 총리에 앞서 낙마한 총리 후보자들 또한 ‘이완구형’이다.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씨는 전후(戰後)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다. (…) 다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앞서 말한 정직과 겸손, 청렴으로 대변되는 덕망과 도덕성이었다. 1938년부터 1955년 사이에 태어난 ‘개발독재 세대’인 네 사람의 면면은 우리의 압축성장 과정과도 닮았다. 오로지 경제성장을 위해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무시했듯이 권력과 부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부도덕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참된 원로를 찾는 일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할 일이다. 시야를 더 폭넓게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영달을 좇아온 주변 인물들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국정의 2인자로서 총리는 국정수행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저 국민이 우러러볼 인물만으로도 반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총리의 자격(4월 23일자 서울신문 기명 칼럼ㆍ손성진 수석논설위원) ☞ 전문 보기
의무는 방기한 채 불온만 감시해온 반동 정부를 국민은 오래 참았다. 지나치게 너그러웠다.
“인권과 안전을 고속성장의 제단에 바쳤던 90년대는 이미 20년이나 지난 과거이다. 하지만 빨간 손수건 따위를 지녔다고 가방이 열리는 식의 부조리는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노란 리본을 단 시내 고궁 관광객들의 가방을 열고 불심검문했던 경찰이 1주기를 맞은 지난 주말에도 비슷한 일을 벌였다. (…) 곤궁에 처한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정부의 행태가 지난 20여 년 동안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하필이면 가장 아픈 세월호의 상처를 통해 확인하는 요즘이다. (…) 대통령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를 외면하듯 참사 희생자 유족의 인권을 돌아보지 않았으며 어느 먼 과거에서 날아온 집권자처럼 무정했다. 정부는 약속했던 진상과 책임규명을 위해서 1년 동안 일보 전진도 하지 않은 채 유족을 하루아침에 돈밖에 모르는 무리로 그려내기까지 했다. 인간의 생명과 권리가 어떻게 한순간에 심연으로 사라질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음에도 희생자들의 황망한 부표가 맹골수도에 묶여있던 1년 동안 모든 것은 제자리였다. (…) 20년 전 인권의 잣대가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에서 불과 1년 만에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는 건 욕심인가 보다.”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을(한국일보 ‘36.5˚’ㆍ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 ☞ 전문 보기
“나는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지 않았다. 정부가 실종자 가족의 동의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게 옳다고 믿었다. ‘인양의 필요성’에 동감하지 않았다. (…) 그런데 지난 2일 생각이 달라졌다. (…)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장에서였다. 52명의 유가족이 삭발한 그날이다. 가족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표출했다. (…) 그들의 울분이 이해가 됐다. (…) 세월호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에 열 달이 걸렸다. 치밀한 작업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흘러갔고, 세월호 인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됐다. 해수부의 당초 계획에는 ‘공론화’라는 것이 들어 있었으나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어명(御命)’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세월호는 인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 이유(4월 23일자 중앙일보 ‘분수대’ㆍ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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