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으로 시작된 화석연료 사용은 인류에게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줬지만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안겼다. 과학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사막화 확대, 강우 증가 등 인류의 생존 여건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인류는 1992년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한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꾸준히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모색된 대응책의 방향은 크게 저감과 적응이다. 즉, 지구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변화된 기후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후변화 추세를 바꿔 놓을 정도의 구체적 대응책 도출에는 실패했다. 지구적 공조가 필수적이나 국가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경제여건, 기술수준 등의 차이로 전세계의 참여 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까지 논의를 반성하고,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ADP)를 만들어내기 위한 협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올 연말 파리총회에서 협의가 완료되면 선진국만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기존의 교토의정서 체제를 뛰어넘어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 방지노력에 참여하는 틀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20년까지 기준배출량(BAU) 대비 온실가스를 30%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다양한 제도와 정책을 도입해 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배출량은 최근까지 대략 15년동안 약 2배 정도 증가할 정도로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배출량의 획기적 감축은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성장 포기 없이는 설정된 배출량 저감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배출량 저감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는 근본적 이유다. 따라서 ‘각국이 스스로 결정한 기여’라는 신기후체제의 기본 원리를 기준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에너지정책 추진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부문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뿐만 아니라 에너지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도 전체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 위치에 있다. 산업구조가 에너지다소비업종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구조를 저탄소형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온실가스 감축은 사실상 어렵다.
산업구조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장기적 안목의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인위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은 온실가스 배출을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탄소누출에 불과하다.
한편,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제조업 기반이 필요하다는 점은 독일이 입증하고 있다. 산업부문을 포함한 모든 부분의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고 저탄소 에너지 보급을 확대해 저탄소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또한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및 연료전지 등 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을 가속화해 비용을 낮추는 일도 중요하다. 즉, 산업구조를 저탄소 경제체제 체질로 시급히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경제체질 개선은 가격 시그널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6%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에너지는 희소성이 높은 에너지원이다. 희소성이 높으면 가격 또한 그만큼 비싸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산업경쟁력 강화, 서민가계 안정 등과 같은 명분으로 저에너지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 결과가 에너지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다. 게다가 화석에너지는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당연히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비용이 반영돼야 한다. 가격 시그널이 저탄소 경제에 맞게 변해야, 경제활동도 저탄소형이 될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는 많은 비용이 수반될 수 있지만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추진되면 부담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장기적인 저탄소 사회에 대한 국가적인 비전을 우선 수립할 필요가 있다. 장기비전에 입각해 점진적으로 산업구조가 저탄소형으로 바뀌고, 그에 걸맞은 연구개발과 투자가 이뤄진다면 기후변화라는 시련은 오히려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박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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