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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기억] 수난의 국무총리

입력
2015.04.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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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영광의 자리일진대, 수난도 이런 수난이 없다. 총리 공백 상태인 지금의 상황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1991년 5월, 노태우 정부의 시국 타개책으로 총리서리에 임명된 정원식 전 문교부장관은 취임 전 마지막 강의를 위해 서울 회기동 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출강했다가 일부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둘러 싸였다. 당시는 대학생 강경대, 김귀정 등이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해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학생들은 구호를 외치며 계란을 던지기 시작했고 곧 밀가루가 날라왔다. 선물 상자를 왼손에 든 채, 온몸이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정 총리는 20여 분간 수난을 당한 후에야 가까스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사건을 빌미로 민주화 투쟁은 동력을 잃었고 학생운동의 순수성도 빛이 바랬다. 서울신문 김경빈기자 찍음 제 28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k.co.kr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정원식총리서리가 운동장에서 학생들에 끌려다니고 있다. 한국일보 박종우기자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 정원식총리서리가 운동장에서 학생들에 끌려다니고 있다. 한국일보 박종우기자
교문을 빠져 나온 정원식총리서리가 처참한 모습으로 택시에 오르고 있다. 정총리 옆으로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박병석 국회부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일보 박종우기자
교문을 빠져 나온 정원식총리서리가 처참한 모습으로 택시에 오르고 있다. 정총리 옆으로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박병석 국회부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일보 박종우기자

정총리 폭행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다음날 해당 대학 총장이 정총리에게 용서를 구했고 곧바로 공안정국이 조성됐다.

이강혁(왼쪽) 외국어대 총장이 1991년 6월 4일 국무총리실로 정원식총리서리를 방문,폭행사태에 깊이 사과하고있다. 머리를 숙이고 두손을 모은 모습이 침통하기만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강혁(왼쪽) 외국어대 총장이 1991년 6월 4일 국무총리실로 정원식총리서리를 방문,폭행사태에 깊이 사과하고있다. 머리를 숙이고 두손을 모은 모습이 침통하기만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28년생인 정원식 전총리는 1년 3개월 여의 총리 재임기간 중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 연형묵 총리와 회담을 갖는 등 굵직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5년 첫 지방자치 선거에서 YS정권의 민자당(현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 DJ의 새정치국민회의(현 새정치연합) 조순 후보에게 패했고 무소속 박찬종의원에게도 뒤졌다. 이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거쳐 현재는 보수단체를 대표하는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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