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엔 환율이 마침내 900원선 밑으로 내려앉았다. 국내 종가 기준 889.23원을 기록한 2008년 2월28일 이후 7년 2개월 만에 최저치다. 원ㆍ달러 교환비에 연동해 산출되는 원ㆍ엔 재정환율은 최근 가까스로 900원대를 유지하다 어제 아침 한 때 100엔 당 899.67원까지 내려갔다. 물론 환율은 장중에 다시 900원대로 복귀했지만 이제 900원 저지선은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올 들어서도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는 원ㆍ엔 환율 하락세는 가뜩이나 저조한 수출에 더욱 타격을 줄 뿐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에도 적잖은 위험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원ㆍ엔이 900원을 밑돌게 된 게 돌발상황은 아니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인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충분히 예상됐다. 최근까지 달러가 전반적 약세를 탄 가운데 원화가 나 홀로 강세를 타고, 거기에 일본의 무제한 양적완화에 따라 엔화 약세가 이어진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ㆍ엔 900원대 붕괴가 새삼 악재로 부각되는 건 더 이상의 엔화 약세는 가뜩이나 경기회복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생각보다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엔화 약세로 수출이 초비상이라는 건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틀리지 않는 얘기다. 이미 우리 경제는 2006~2007년 원ㆍ엔 700원대의 엔저 터널도 극복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때는 글로벌 경기 호조가 받쳐주고 중국 성장세도 왕성해 수출에서 엔저 부작용을 상쇄할 여지가 충분했다. 반면 요즘은 글로벌 저성장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그러잖아도 수출이 지속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 엔저 부작용까지 덮친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따라서 지금은 기업에 체질강화를 통해 엔저를 극복하라는 교과서적인 주문만 할 게 아니라, 당장 가격 경쟁력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통화정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국면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엔화 약세 부작용은 비단 수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국내 증시의 가파른 상승세는 기업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원화 강세에 따라 우리나라가 글로벌 자금의 과도기 투자처로 부각됐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엔화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질 경우, 환차익 등을 노린 단기 투기세력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증시 등에 형성된 거품은 미국 금리인상 등 해외 변수에 따라 신기루처럼 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가파른 엔저가 국내 시장에서 투기를 부르고, 투기가 헛된 거품을 부풀리지 않도록 엔저의 속도와 수준에 유의하며 선제적 조치에 미흡함이 없도록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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