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개인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봉건적 신분 체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개인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장에서 재화와 용역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노동을 팔아 임금을 획득해야만 가능하다. 신분적 예속을 벗어난 노동이 상품화된 것이다. 노동의 상품화란 사람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상품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힘에 종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상품으로서의 개인은 대체 가능한 존재로서 서로 경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노동력의 가격은 헐값으로 떨어진다. 노동의 상품화는 개별 근로자를 취약한 존재로 만든다.
경제학적 설명에 의하면 개인은 시장 안에서 노동과 여가, 그 밖의 여러 대안을 놓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시민법적 관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평등한 존재인 근로자와 기업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조건을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는 허구에 불과하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장기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거나 이를 거부한 채 굶주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불과했다.
노동의 상품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근로자들은 연대했고 노동3권 등 근로자의 권리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이 변화는 근로자들의 불행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가 얻은 성찰에 기초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항구적 세계평화를 위해 2개의 국제기구가 설립되었다. 국제연맹과 1919년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가 그것이다. ILO는 헌장 선언에서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에 기초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다”고 천명했다. 또한 ILO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94년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문구와 함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에 기초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다는 ILO 헌장 선언의 진실성은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확인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언명은 역설적이게도 노동의 상품성을 받아들이고, 그와 동시에 상품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표현한다. 노동시장에서 상품으로 취급 받는 인간은 시장 밖의 영역 즉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참여와 기본권의 주체이며 그 자체로서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결해야 하며 사회적 공론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노동3권, 인간다운 근로조건에서 일할 권리, 적정임금을 받을 권리, 사회보장수급권 등은 모두 이를 뒷받침하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들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다. 한 일간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일반 고교의 사회과 교과서에서 노동 관련 내용은 불과 2%에 불과하다고 한다. 학교 교육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은 일을 하다가 불합리한 처우를 받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근로자들의 연대 활동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직업을 갖고 스스로 일해 소득을 얻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청소년을 노동시장의 상품으로만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숙하고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청소년들은 노동으로 소득을 얻는 것이 떳떳하고 헌법에 의해 근로자의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경제 개념과 금융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큼 청소년에게 근로자의 권리를 가르쳐야 한다. 재산권의 보장이 경제적 번영을 위해 중요한 만큼 근로자들의 권리는 민주주의의 존속과 평화의 유지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과 90여 년 전 세계 인류가 항구적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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