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에서 잠수함은 ‘소리 없는 킬러’라고 불립니다. 바닷속 깊이 은밀하게 침투해 상대방의 목덜미 바로 앞까지 다가가 기습적으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최고의 무기로 평가 받습니다. 잠수함을 잡기 위해 함정에서 무차별로 어뢰를 쏘고 온갖 첨단 탐지장비가 달린 헬기와 항공기를 투입해 호들갑을 떨어도 성과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죽하면 잠수함이 먼저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망망대해에서 이를 찾아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 잠수함의 최고봉은 단연 원자력잠수함입니다. 한번 핵 연료를 장착하면 사실상 영구적으로 작전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디젤잠수함과 달리 연료 보충을 위해 물 위로 올라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적의 방어에 노출되지 않고, 잠수함이 갖는 위협과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 양국이 23일 새로운 원자력협정에 합의하면서 우리에게는 꿈만 같던 원자력잠수함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협정 개정안은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 골자인데요. 농축 우라늄이 바로 원자력잠수함의 연료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시기상조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번 협정에서 거론된 농축 우라늄과 잠수함에서 취급하는 핵 연료는 서로 성격이 다릅니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기껏해야 20%이하의 저농축 우라늄만 다루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원자력잠수함에는 우라늄235를 최소 20%~최대 85%까지 농축해 사용합니다. 협정에 따라 미국이 우리의 원자력 농축을 허용해도 농도가 낮기 때문에 잠수함 연료로는 아예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수로에 투입하는 우라늄이 3%정도 농축된 것에 비하면 상당한 발전이지만 20%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은 군사용으로 무리입니다. 원자력잠수함을 64척 보유한 미국의 경우 80%정도로 농축한 우라늄을 잠수함에 장착합니다.
물론 우리가 직접 하지 않고 미국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수입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란 핵 협상에서 보듯 전세계적으로 핵 비확산에 목을 매는 미국인지라 아무리 동맹이더라도 우리에게 고농축 우라늄을 팔리 만무합니다.
원자로도 문제입니다. 통상 발전용 원자로의 경우 우라늄이 반응하는 공간을 파이프로 연결해 바깥에 장착한 터빈을 돌리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반면 잠수함은 공간이 좁기 때문에 원자로와 터빈을 같은 공간에 일체형으로 장착합니다. 자연히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이고 스마트 원전을 중동에 수출할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했지만 아직 원자력잠수함에 들어가는 첨단 원자로를 설계할 만한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게 정부와 군 당국의 설명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은 1,200톤 규모의 209급 잠수함 9척과 1,800톤 규모의 214급 잠수함 3척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모두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한번 연료를 충전하면 미국까지 왕복할 수 있다지만 최대 잠항시간이 한달 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원자력잠수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2020년을 목표로 3,000톤급 잠수함 9척을 개발해 배치할 예정이지만 이 또한 디젤잠수함입니다. 결국 우리 군의 청사진에 원자력잠수함에 대한 구상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는 과거에 원자력잠수함 개발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원자력잠수함 개발을 추진하다가 2000년대 초반 들어 돌연 작업이 중단됐습니다. 일부에서는 당시가 노무현 정부였던 점에 비춰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합니다.
물론 원자력잠수함이 우리 형편에 필요한지를 놓고 이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입니다. 해군의 잠수함이 매번 전세계를 돌아다닐 것도 아니고 한반도 주변 해역을 방어하는데 값비싼 원자력잠수함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미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까지 감안하면 수긍할 법도 합니다.
다만 한반도 주변국들이 제공권을 선점하기 위해 최첨단 스텔스기 개발에 목을 매듯이, 바닷속의 제왕인 원자력잠수함 개발도 언젠가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로 다가올지 모를 일입니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미국이 두려워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 열을 올리며 어떻게든 바다에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우리 군은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있나요.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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