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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비확산 원칙 지키며 동맹 배려…협상 '윈-윈'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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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비확산 원칙 지키며 동맹 배려…협상 '윈-윈' 평가

입력
2015.04.2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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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넘게 끌어온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이 최종 타결된 데 대해 미국 조야는 대체로 “양국 모두 ‘윈-윈’(win-win)이 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농축과 재처리를 불허한다는 ‘비확산 원칙’을 지켜내면서도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도 적절히 배려하며 추후 여지를 열어놓는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22일 CSIS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에서 “수십 년간에 걸친 한·미 양국의 민간 원자력협력 관계를 반영하는 독특하고 호혜적인 협상”이라며 “양국이 미래에 긍정적인 원자력협력을 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차 석좌는 최대 쟁점이었던 농축·재처리 허용문제에 대해 “농축·재처리를 허용한 게 아니라 고위급 협의체에 차후 논의나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민감한 문제를 피해나갔다"며 "한국에 특정한 기술능력에 대한 주권을 영원히 포기라고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비확산 위기에 대처했다”고 설명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새로운 협정은 현 시점에서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사전동의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선진화된 민간 원자력 분야를 인정하고 한미 원자력협력을 심화시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에 정통한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의 김두연 연구원은 한국 언론에 논평을 보내 “한국과 미국의 원자력산업의 상호의존성을 보여주는 호혜적이고 균형잡힌 협상결과”라며 “앞으로 양국 원자력산업 협력이 계속되고 확대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양국 각기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비핵화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양국의 원자력 협력을 지속하고 확대해나가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연성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선진적인 핵프로그램을 갖기를 원하는 한국의 희망과 민감한 핵주기 능력의 확산에 반대하는 미국의 원칙이 균형을 이뤘다”고 밝혔다.

영국 런던의 세계원자력협회가 발간하는 월드 뉴클리어 뉴스는 이날 ‘한국이 승리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은 언젠가 우라늄을 농축해 비(非)무기급 핵연료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일단 미국이 핵연료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갖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할 때 농축과 재처리를 강제로 금지한 규정(이른바 골드 스탠더드)을 적용한 이후 다른 나라와의 원자력협정 협상에서 이를 일종의 준거로 삼아왔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농축과 재처리 기술을 갖추지 않은 외국과 협상할 때에는 비확산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해 베트남과의 원자력협정 협상에서도 협정 본문에서는 농축·재처리를 금지하는 명문화된 규정을 넣는데 실패했지만, 서문에 ‘정치적 선언’으로서 농축·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과의 이번 협상에서 국제 비확산 체제의 수호자로서 비확산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미국 국무부는 이날 한국 언론의 논평 요청에 “이번 협정은 미국의 법과 오랜 비확산 정책과 완벽히 일치한다”며 “비확산에 대한 양국 정부의 공통된 확약이 원자력 협력관계의 코너스톤”이라고 답변했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동맹인 한국 정부의 입장과 원자력산업 전략이라는 현실적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도 국제 원자력 무대에서 격상된 위상을 바탕으로 '핵주권'을 강조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미국 정부는 강경한 비확산 원칙에 따라 농축·재처리의 미래 가능성까지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으나, 한국 정부의 집요한 요구 끝에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추후 농축·재처리의 길을 열어주는 차원에서 ‘Not No, Not Now’(원천적으로 불허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안 된다는 의미)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이처럼 유연성을 발휘한 이면에는 원자력산업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자력산업 자체가 쇠퇴하는 미국으로서는 자신의 원천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원자력강국인 한국과 손을 잡는 것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자력기술 수준이 올라가고 원전수출 경쟁력이 강화될 경우 자연스럽게 미국도 공동수혜자가 된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원자력산업계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매우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며 “이번 협정이 최종적으로 서명될 경우 한국의 원자력산업뿐만 아니라 미국 원자력산업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조야가 대체로 이번 협상을 ‘윈-윈’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이지만, 비확산 전문가들과 의회 내 강경파들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특히 UAE와의 협상 때 적용한 '골드 스탠더드'를 다른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번 협상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상원의 심의와 승인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번 협상결과가 현재 오바마 행정부과 공화당이 대립하는 이란 핵협상 논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맹국인 한국에는 원칙적으로 농축을 불허하면서 공화당이 ‘불량국가’로 치부하고 있는 이란에는 평화적 에너지의 이용을 명분으로 일정수준의 농축을 허용해준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상원이 조만간 이란 핵합의 의회승인법안을 심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공화당의 ‘이란 핵합의 흔들기’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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