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명이 흔적도 못 찾자 투입
"찾아" 명령에 15초 만에 찾아내
평소 피 묻은 공 찾는 훈련 반복
사람보다 후각이 1만 배 뛰어나
지난 9일 오전 충남 아산에서 교육을 받던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김영기 경사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이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잠적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찾으라는 긴급 미션이 떨어진 것. 김 경사는 경찰 체취증거견 ‘나로’의 핸들러(견 지도수). 김 경사가 서울 남태령 경찰특공대 견사에 있던 나로를 찾아 성 전 회장의 휴대폰 통신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북한산 형제봉 인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15분이었다. 이 때까지 경찰은 1,400여명의 경찰력과 헬기까지 투입하고도 성 전 회장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김 경사와 나로는 성 전 회장이 자주 다녔다는 등산로를 맡았다. 북악매표소에서 200m쯤 올라갔을까. 나로가 별안간 등산로를 벗어나 오른쪽 방향으로 가자며 줄을 끌었다. 30m 가량을 산 속으로 들어가자 눈 앞에 나타난 바위 위로 한 달음에 올라 선 나로는 김 경사를 향해 쉴 새 없이 짖어댔다. 성 전 회장 가족이 건네 준 베개와 전날 입었던 옷의 냄새를 한 번 맡았을 뿐인 나로가 10여분 만에 그의 시신을 찾아 낸 것이다. 6시간이 넘도록 성과가 없었던 수색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나로는 경찰 소속 견 130여 마리 가운데 사체 수색 등에 특화된 체취증거견이다. 마리노이즈 수컷으로 17마리 체취증거견 중에서도 단연 ‘명견’으로 통한다. 20일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진행된 나로의 야외 훈련은 그 명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날 김 경사는 평상 시와 다른 훈련 상황임을 알게끔 하기 위해 나로에게 방울 달린 목걸이와 ‘과학수사’라고 적힌 조끼를 입혔다. 나로는 민첩하고 명령을 잘 따르는 데다 온순하기까지 해 김 경사의 “앉아” “짖어”라는 지시를 어김없이 수행했다.
나로의 눈빛이 변한 건 “찾아”라는 본격적인 수색 명령이 떨어졌을 때였다. 다소곳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빠른 걸음으로 숲을 뒤지기 시작했다. 땅에 코를 바짝 댄 채 지그재그 식으로 찬찬히 산을 타고 오르다가 나무 기둥 옆 냄새를 한 번 ‘킁킁’ 맡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로는 찾던 냄새가 아닌지 잽싸게 고개를 돌려 다시 언덕으로 향했다. 앞서 김 경사는 나로가 차에서 대기하는 동안 며칠을 삭힌 피가 묻어 있는 플라스틱통과 거즈 등이 담긴 비닐 봉투를 나뭇가지 밑에 보이지 않게 숨겨둔 터였다.
출발지점에서 50m 밖에 떨어진 목표물을 찾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5초. 나로는 비닐 봉투를 앞에 두고 김 경사를 바라보며 득의양양하게 짖었다. 김 경사는 연신 “굿 보이”를 외치며 나로가 좋아하는 파란색 고무공을 쥐어 줬다.
체취증거견들은 평소 썩은 피가 묻은 물건들을 찾아내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받는다. 사체에서 풍기는 냄새와 비슷한 썩은 피를, 개들이 좋아하는 공과 함께 통에 넣어 후각을 자극하는 교육법이다. 김 경사는 “‘유사한 냄새가 나는 곳에 가면 좋아하는 공이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실전에 투입하는 원리”라며 “목표물을 찾을 때마다 핸들러가 보상 개념으로 공을 꺼내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납치됐다 살해된 ‘혜진ㆍ예슬양’ 사건에 처음 투입된 경찰 체취증거견들의 활약은 갈수록 두각을 내고 있다. 지난 17일에도 경기 양평군 산악 지대에서 무인항공기 드론까지 띄우고도 발견하지 못한 80대 실종자를 투입 이틀 만에 찾아냈다. 지난해 전남 곡성군에서는 ‘채권자 유인 살인사건’의 범행 장소인 낚시터 주변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 혈흔이 묻은 장갑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로의 경우 2013년 수원 권선구에 있는 칠보산 능선에서 실종된 50대 남성의 시신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경찰 관계자는 “체취증거견들은 사람보다 1만배 뛰어난 후각을 지녀 수색 작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앞으로 관련 장비를 보강하고 다양한 체취선별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선진 과학수사 기법의 한 축으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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