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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깊은 고민 없이 야만적으로 개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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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깊은 고민 없이 야만적으로 개발돼"

입력
2015.04.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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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자 김성도 고려대 교수 강연… "안 보이는 전통ㆍ문화도 지켜나가야"

"가장 잘된 청계천 자료가 하버드대 것이어서 부끄러웠다"는 김성도 교수.
"가장 잘된 청계천 자료가 하버드대 것이어서 부끄러웠다"는 김성도 교수.

“한국의 도시는 압축성장 속에 많은 것을 빠르게 잃었고, 그 잃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렸죠.”

기호학자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는 21일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사유와 반성이 부족한 한국의 도시 계획을 이렇게 비판했다. 이날 강연은 26일까지 서울도서관 1층에서 열리는 한국출판문화상 수상ㆍ후보작 특별전시에 맞춰 지난해 출판상 저술부문 후보였던 그의 책 ‘도시인간학’(안그라픽스 발행) 독자들과 만남의 형태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세계적 건축가 알도 로시의 표현을 빌려 “인간의 정신에서 기억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듯, 도시의 역사는 도시의 영혼이자 도시 거주자의 집단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로쿠스(locusㆍ궤적)”라고 말했다. 또 “도시의 시간성이야 말로 인간을 환희에 젖게 만들고 인간이 품은 시간의 이미지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기호”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하지만 “한국의 20세기 대도시는 지난 시간을 표징하는 흔적과 기호의 축적, 시간의 깊이를 너무나 야만적으로 파괴해왔다”며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도 스스로 그 변화에 대한 자료나 아카이브조차 만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청계천 기록을 뒤지다 찾아낸 가장 우수한 자료가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의 것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훌륭하고 인간다운, 행복한 도시에는 공학자와 건축가만이 있었던 게 아니라 처절할 만큼 치열한 사유를 한 도시 사상가들의 고민과 사상적 투자가 있었다”며 “깊은 사상이 없다면 좋은 도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은 이런 관점에서 도시 기호학을 계보학적 관점에서 하나의 사상 체계로 정리한다. 그는 “우리가 외면해 온 수없이 많은 도시 사상의 보물을 건져 올려 도시의 판독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고 싶었다”며 “앞으로 이 같은 연구를 활발히 해나가야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도시 이념이 창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기능주의 일변인 근대도시계획을 비판하며 “도시환경을 물리적 공간으로만 간주하고, 거리는 이동비용으로 환원하는 기능주의적 계획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통과 문화의 깊이를 포착할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이 추구해야 할 도시의 가치가 무엇인지 가치론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부 전문가가 담론을 독점하고, 모든 중요한 도시계획의 결정이 밀실에서 되다 보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처럼 누구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공간이 나왔다”며 “도시 공간에 대해 시민들이 더 많은 공적 의식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공동시민포럼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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