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일 아파트 단지 안에서 주차를 하던 이모(35)씨는 부근에 세워둔 고급 외제 승용차의 뒷부분을 살짝 받았다. 황급히 내려 살펴 보니 뒷범퍼 커버 부분에 미세하게 긁힌 자국만 보여 안도했지만 외제차 주인은 부품 교체를 요구했다. 긁힌 부분을 칠하는 데 드는 비용은 35만원이지만 부품 교체 비용은 110만원이나 든다.
# 지난해 8월 부산지법은 최고급 외제 승용차 뒷부분에 부딪혀 조그만 흠집을 남긴 운전자에게 수리비 1,535만원과 수리 기간 동안의 임시 차량 렌트비 3,900만원 등 5,000여만원을 요구한 김모씨에 대해 수리비 270여만원과 렌트비 117만원 등 약 356만원만 받도록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가벼운 접촉 사고에도 수리를 하지 않고 부품 교체를 요구하면서 당사자간 분쟁이 끊이지 않자, 손해보험협회는 경미한 자동차 사고 수리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자동차학과 교수와 정비업계 전문가 등이 포함된 연구진은 국내ㆍ외 대표 차종 10개를 선정해 파손 부위와 정도 별로 수리 기준을 만든다. 수리 기준이 만들어지면 내구성ㆍ열전도 기능이나 디자인적 요소 등을 따져 수리된 부품과 새 부품이 차이가 있는지 실험을 한다. 충돌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충돌시험도 거치게 된다. 실험을 마치게 되면 정비업계와 손해보험업계, 학계 및 소비자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갖고 10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손해보험협회가 이처럼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선 건 동일 차종, 동일 파손에도 피해차량 주인이나 정비업체 성향에 따라 수리 방법과 범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리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하는 자동차보험의 특성상, 살짝 긁히는 등 사소한 피해가 발생해도 소비자는 “어차피 수리비는 보험사가 낸다”는 생각에 무조건적으로 부품 교체를 요구하고, 부품 판매 수익을 남기려는 자동차회사 직영 정비공장도 부품교체를 유도한다. 협회 관계자는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양산하고 보험금 누수로 인해 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된다”며 “경미 사고 수리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 사회적 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등 관계 법령에서 수리 기준을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아 행정지도문이나 정부 고시를 통해 이 기준을 강제할 수는 없다”며 “시장 자율원칙에 따라 보험업계와 정비업계가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조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