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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북정책 이원화 필요하다

입력
2015.04.2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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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주최한 국제회의에 지정 토론자로 참석했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동서독 통일 과정과 중국ㆍ대만의 교류 확대에서 교훈을 얻고 한국의 나아갈 방향을 논의해 보자는, 어찌 보면 그간 많이 다루어 조금은 식상한 주제의 회의였다. 하지만 이 회의는 나에게 두 번의 큰 충격을 주었다.

첫 번째 충격은 내가 지정토론을 해야 할 대만 학자의 글을 미리 받아 읽어볼 때였다. 다년간의 대만 여론조사 결과와 양안(兩岸)관계 통계자료를 분석한 글이었는데 주요 논점중의 하나는 그간 중국과 대만간의 무역과 투자, 인적 교류가 계속해서 증가해왔음에도 대만인들의 인식은 중국에서 점차 멀어졌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양안간의 무역량은 2001년 약 108억 달러에서 2014년 약 2,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양안간의 결혼은 2003년 3만7,582건에서 2014년에는 1만491건으로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대만인들의 정체성이었다. 1992년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대만인이라는 대답은 17.6%, 중국인은 25.5%, 양쪽 모두라는 대답은 46.6%였다. 하지만 2014년에는 대만인 60.6%, 중국인 3.5%, 양쪽 모두 32.5%의 결과가 나왔다. 특히 2007년에는 대만인 44.7%, 양쪽 모두 43.7%로 나타났으나, 2008년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취임 이후 양국 간 경제와 인적 교류가 급속히 늘어났음에도 ‘양쪽 모두’의 응답자가 급속히 ‘대만인’으로 정체성을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양자 간 교류가 늘어나면 상호간의 소통과 이해가 높아져 이견 차를 줄일 수 있고 점차 통합까지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그간 당연시 되어왔다. 그런데 이를 뒤집는 결과가 나왔으니 그 이유를 저자에게 묻고 토론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 또한 이러한 상황을 소개할 뿐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것 같았다.

헌데 이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이 그 다음 세션에서 발표를 해준 한 의대 교수님에게서 나왔고 나는 두 번째의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담담하게 의사로써 경험한 대북(對北) 의료보건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병에 걸린 채 죽어가는 아이를 데려온 부모의 슬픈 얼굴은 치료하면 살릴 수 있다는 남쪽에서 온 의사의 말에 기쁨과 고마움으로 가득 찼다. 치료가 계속되며 아이와 부모는 깊은 신뢰를 의사에게 보냈다. 의사는 아이를 치료하던 중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다른 의사가 치료를 계속하면 아이는 살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이후 남북 간의 사건과 갈등이 이어지며 대북의료지원 사업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의료지원활동으로 북한을 갔을 때 치료와 약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결국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다시 만난 아이의 부모는 배신감과 분노가 가득 찬 표정으로 더 이상 의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한국은 김정은 체제와 북한 주민을 나누어 대응하는 대북이원화 정책을 이제 본격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북핵과 통일에 관련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북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정책과는 별도로 북한 주민들과 신뢰와 소통을 쌓아가는 인도주의적 사업, 특히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적인 의료보건지원 정책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

양안관계의 예를 보면 월등한 국력을 앞세워 교류를 늘리더라도 결국 신뢰를 얻지 못하면 진정한 통합이 요원해짐은 물론 도리어 중국에 대해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만 높아졌다. 독일의 통일은 분명 냉전 말기의 국제정세 변화, 동서독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결단도 중요했다. 하지만 우리가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베를린 장벽을 넘어뜨리고 서독으로 걸어왔던 수많은 동독 주민들의 모습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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