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뒤끝뉴스] '서울 한복판 가미카제 영상' 비난만 할 일인가

입력
2015.04.21 17:44
0 0
서울시립미술관 ‘미묘한 삼각관계’전에 전시된 고이즈미 메이로의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미묘한 삼각관계’전에 전시된 고이즈미 메이로의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지난 3월 1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중일 3국 협력기획전 ‘미묘한 삼각관계’는 시작부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관련기사 보기) 전시장 3층에 설치된 일본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영상작품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 때문인데요. 이 작품은 젊은 배우에게 자폭 비행기 ‘가미카제’의 조종사로 출정하기 전 부모에게 작별을 고하는 연기를 시킨 후 그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영상 속 대사는 이렇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떠날 시간이 됐습니다. 이 고결한 목적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자랑스럽게 죽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성공을 기도해 주세요. 두 분 몸 건강하십시오. 안녕히.” 이 짧은 문장 몇 개를 주인공은 ‘잘 연기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감독 역할을 맡은 작가는 화면 밖에서 “좀 더 사무라이 정신을 공격적으로 표현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 작품은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미술관에 일본 제국주의를 표현하는 미술품을 걸었다’는 이유로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사실 9분 40초짜리 영상 마지막에는 반전이 숨어 있는데요. “마사키, 제발 가지마. 제발 엄마와 머물러 다오. 내 아들아, 안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겹쳐 나옵니다.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는 “일본에서 최근 가미카제를 낭만화하는 경향을 목도하고 있다”며 “가미카제의 이미지와 단어들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를 영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이즈미의 의도를 참고해 이 작품 전체를 다시 보았습니다. 영상 속 주인공 청년은 가미카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전후 세대로 상정됐습니다. 처음에 그의 연기는 무미건조합니다. 대체 왜 이 연기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멋쩍은 표정도 짓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사무라이 정신’을 주입하기 시작하자 점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결국 정말로 울부짖다가 주저앉고 마는 주인공. 무슨 의미일까요?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모르는 전후 세대의 청년들이 지금처럼 미화된 사무라이와 가미카제 이미지를 받아들이다가는 언제든지 다시 제국주의에 휘말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9분 40초,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품에 인내심 있게 투자해줄 관객은 얼마나 될까요.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이 설치된 공간은 고이즈미의 다른 영상작품이 여럿 설치된 장소입니다. 다양한 영상들이 저마다 나를 봐달라고 손을 흔들고 있는데 한 작품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반전으로 작품의 의도를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서설이 길다는 느낌도 듭니다.

고이즈미의 작품뿐 아니라, ‘현대 미술은 곧 영상예술’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 전시장에는 영상 작품이 많습니다. 영상은 가만히 멈춰 있는 평면회화나 조각보다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도 확실히 많고 메시지 전달 효과도 뛰어난 매체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상이 전시장에 난립하다 보니 오히려 관객들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맙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작가들은 다양한 시도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으려 합니다. 관객이 영상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영상에 몰입할 ‘입구’가 필요한 겁니다.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의 경우에는 가미카제 조종사를 연기하는 주인공의 격렬한 외침이 원래 의도된 입구였겠죠. 하지만 그 입구가 한국의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에서는 오히려 반감을 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을 다른 영상 작품들과 아예 따로 설치됐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미묘한 삼각관계’전에 전시된 고이즈미 메이로의 ‘구술사(Oral History)’.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미묘한 삼각관계’전에 전시된 고이즈미 메이로의 ‘구술사(Oral History)’.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 함께 나온 고이즈미의 최신작 ‘구술사’는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습니다. 전체 재생시간은 47분 정도로 훨씬 길지만 2층 큰 방에 따로 설치됐기 때문입니다. 내용 면에서 봐도, 47분 전체를 볼 필요 없이 조금만 앉아 있으면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역사에 무감각하고 무지함을 풍자하기 위한 작품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본 후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도 한국인을 공격하려는 작품이 아니라 역사에 무지한 일본인들을 풍자하기 위한 작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술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작품을 보게 되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감상을 마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영상작품 같은 경우는 30분 이상 상영되는 작품들이 많아 작품 전체를 볼 시간이 거의 없기 없습니다. 작품에 대한 특정한 인상에 붙잡혀 기사를 쓰게 되기도 합니다. 그게 작품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죠. ‘서울 한복판 가미카제 영상’이란 기사는 잘못된 기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작품을 볼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그 기사는 그렇게 쓰이지 않았을 겁니다.

‘젊은 사무라이의 초상’을 둘러싼 해프닝은 작가가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전시 여건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그리고 기자들에게 작품을 볼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큰 잘못이 아니라, 몇 가지 작은 실수로 인해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