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삽화에 매진 외길인생
철저한 고증 작품으로 명성
작년 지병 악화로 붓 내려놔
후배 작가들 헌정 그림책 출간
"민족 정서 표현할 작가 맥 끊겨"
"서너살 때 곱돌로 그림을 그렸지
아버지는 글자 쓰길 바라셨지만…
유명 작가 삽화 베끼는 건 싫었어
창경궁에 가서 원숭이들 그렸지
수위가 호랑이 우리도 알려주더라고"
‘그림이 들어가는 책은 그림책’이란 생각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지금도 헌책방에서 70~80년대 출간된 소설책을 집어 들면 그 안에는 어김 없이 삽화가 있다. 대부분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첫 세대의 작품으로, 그 중에는 틀림 없이 홍성찬(86) 작가의 그림이 있을 것이다.
홍 씨는 한국 일러스트 역사의 산 증인이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싶어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1955년. 이후 60년 간 삽화만 그리며 살았다. 시절이 바뀌어 소설에서 삽화가 빠지고 삽화가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신문 소설도 뜸해졌으나, 홍 씨는 아동도서로 둥지를 옮겨 계속 그림을 그렸다.
세월이 흐르고 당시를 대표했던 삽화가들이 하나 둘 유명을 달리하면서, 홍 씨는 “우리 민족의 옛 모습, 옛 물건, 옛 사람들의 정서를 사실에 가장 가깝게 그릴 수 있는 현존 유일의 일러스트레이터”(정병규 어린이책예술센터 연구원)가 됐다. 그런 그가 지난해 그림에서 손을 놓았다. 지병인 당뇨망막증이 심해진 데다 치매 증상이 겹쳤기 때문이다.
후배 작가 윤재인 느림보출판사 대표는 평생 일러스트에 바친 홍 씨의 삶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해 최근 헌정 그림책 ‘오늘 피어난 애기똥풀꽃’을 출간했다. 애초에 윤 대표가 글을 쓰고 홍 작가가 그림을 그리려고 했으나 지난해 초 작가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작업을 중단하고 오승민 작가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리다 만 12점의 그림은 홍 씨의 마지막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21일 홍 씨의 경기 고양시 자택을 찾았다. 사물이 겹쳐 보여 아예 그림을 놓고 있다는 그는 몸이 허락하면 다시 그림을 그릴 거냔 물음에 “아이구 당연하지”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1955년부터 삽화를 그렸으니 벌써 60년째다.
“그림 그린 건 서너 살 때부터지(웃음). 곱돌(활석)이라고 알지 모르겠는데, 땅에 그으면 하얗게 나오는 게 있어요. 그걸 갖고 마당에다가 동그라미로 사람 얼굴을 그리고 있으면 아버지가 그렇게 싫어하셨어. 같은 낙서라도 글자를 쓰면 좋아하시는데 그림을 그리면 탐탁잖아 하시는 거야. 출판사 그림을 그린 건 이십 대 후반이었는데 처음엔 일거리가 없었어요. 날 믿고 맡겨주질 않는 거야. 우경희(2000년 작고) 선생 같은 경우엔 일본에서 그림도 배워오고 했지만 난 미술학교는 가본 적도 없으니까. 그때 소설가 곽하신 선생이 ‘희망’지 편집자였는데 날 도와주겠다고 일거리를 많이 갖다 줬어요. 알선료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 같은 무명화가들한테 일을 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어요.”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60년 간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유일하게 자신하는 게 남의 그림 베낀 적 없다는 겁니다. 그땐 유명한 삽화가 한 명 나오면 너도나도 베끼기 바빴어요.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 젊을 적엔 창경궁에 가서 동물들 그리며 연습했어요. 전차 탈 돈이 없어 아현동에서 창경궁까지 걸어가, 또 문 열 때까지 한참 기다리고, 그래서 들어가 원숭이 같은 걸 그리고 있으면 수위들이 이상하게 쳐다 보다가 나중엔 ‘저쪽에 호랑이 우리도 있다’며 알려주고 그랬어요. 쉽게 돈 벌려면 화료(그림값) 높게 쳐주는 곳만 찾아 남의 그림 베껴다 내면 되지만, 부끄럽지 않게 그림 그리고 싶었어요. 나중에 그림에 자신이 붙고 일거리가 늘어난 후에도 화료 적게 주는 출판사 일도 가리지 않고 했어요. 내 화료도 적지만 그쪽 사람들 월급도 뻔히 아는데 그려달라면 그려줘야지 뭐.”
-성인도서에서 점차 아동 그림책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과 멀어진 건 아닌지.
“삽화란 말 몰라요? 끼어드는 그림이란 뜻이에요. 남이 창작한 글에다가 옷을 입히는 거지. 창작은 글 쓰는 사람 몫이고 난 내 분수에 맞게 글을 보면서 이리저리 상상하고 자료 조사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역사물을 많이 그렸는데 처음엔 고증이 잘못됐다고 저자와 독자들한테 지적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계속 훈련이 됐던 것 같아요.”
홍 씨는 고증에 철저한 작가로 유명하다. 작업 전 도감을 비롯해 온갖 자료를 수집하는 건 기본이다. ‘여우난골족’을 그릴 땐 연변 산골 마을까지 찾았다. 한국 근현대사를 직접 목격한 두 눈과 철저한 고증 정신이 합쳐져 탄생한 그림엔 ‘한국적’이란 말 외에 다른 수식을 찾기 어렵다. 2006년 펴낸 ‘홍성찬 할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민속?풍물화 기행 시리즈’(전 5권)는 근대화 이전 한반도의 생활상을 자세히 묘사한 그림책으로, “분수에 맞게” 그림만 그린다는 작가의 말과 달리 삽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이호백 그림책 작가는 “홍성찬의 논픽션 정신은 지금 우리 시대에 독보적”이라며 “그만의 성실함과 본질에 다가가는 진실함, 그리고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에서 떠올려볼 수 있는 유머와 융통성이 집결된 이미지”라고 평가했다.
홍 작가의 방에는 그가 작업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는 이사할 때마다 작업물을 잃어버려 지금은 절반도 남아 있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가장 아끼는 그림을 꼽아 달란 말에 책장 앞에 오래 서성이던 그는 ‘단군신화’(보림 발행)를 빼 들었다. 환웅과 웅녀를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책들과 달리 선사시대의 수렵 생활과 신석기 시대의 농경 생활 등 당시의 생활상을 전문가 고증을 통해 치밀하게 재현한 것이 눈에 띈다.
홍 작가의 작업 중단 소식에 그림책 계에서는 탄식이 흘러 나오고 있다. 윤재인 대표는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옛 풍습을 다룰 수 있는 작가들의 맥이 끊겼다”며 “홍선생님이 돌아가시면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늘 피어난 애기똥풀꽃’에 대해선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애기똥풀꽃처럼 소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에 헌정하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주요작품
‘단군신화’(1995년, 제 16회 한국어린이도서상 특별상 수상)
‘집짓기’(1996년, 제17회 한국 어린이도서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수상)
‘난중일기’(1996년)
‘땅 속 나라 도둑 괴물’(1997년)
‘허준과 동의보감’(1998년)
‘재미네골’(1999년)
‘아리 공주와 꼬꼬 왕자’(2001년)
‘홍성찬 할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민속?풍물화 기행’ 전 5권 (2006년)
‘여우난골족’(2007년)
‘매일매일이 명절날만 같아라’(2007년)
‘할아버지의 시계’(2010년)
‘토끼의 재판’(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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