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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국기모독죄

입력
2015.04.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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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화 이듬해 폐지된 ‘국가모독죄’(형법 제104조의 2) 규정은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로 시작했다. 1975년 도입 당시의 입법 취지는 ‘국가모독 등 사대행위를 차단함으로써 일부 고질적 시대풍조를 뿌리 뽑고…’였지만, 실제로는 유신정권에 대한 해외 경유 비판까지 철저히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대표적 헌법기관이 대통령이기에 흔히 ‘국가원수모독죄’로 불렀고 아직 그리 기억하는 사람이 적잖다.

▦ 이와 달리 ‘국기모독죄’는 살아있는 형법상 범죄다. 형법 105조 ‘국기ㆍ국장의 모독’의 일부인 국기모독죄는 태극기를 ‘손상ㆍ제거ㆍ오욕(汚辱)하는 행위’에 적용된다. 행위자가 고의 없이 그런 행위를 했을 경우는 물론이고, 명백한 고의가 있더라도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없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 거꾸로 된 태극기를 흔든 이명박 전 대통령, 태극기를 밟은 한명숙 전 총리, 태극기에 서명을 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한결같이 결여했던 목적이다.

▦ 그런데 대한민국을 어떻게 모욕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어떻게 모욕감을 느낄 수 있을까. 과거 ‘국가모독죄’라면 그나마 국가기관인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은 모욕, 즉 명예감정의 훼손을 겪을 만했지만, 국가 자체가 모욕감을 느낄 수는 없다. 결국 모욕 행위의 객체이자 모욕을 느끼는 주체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국가모독죄와 달리 국기모독죄가 아직 살아있는 것도 태극기에 대한 국민의 집단의식 때문이다. 보호법익도 통설의‘국가 권위와 대외적 체면’이 아니라 국민의 집단적 존중의식일 것이다.

▦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9년 표현의 수단으로서 성조기 소각도 가능함을 인정했다. 유난히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미국적 전통을 일깨우지만, 국기에 대한 미국민의 역사감정이 한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 과정에서 한 남성이 태극기를 불태워 놀라움을 던졌다. 경찰이 국기모독죄를 적용할 방침이라지만 목적성 입증은 극히 어려워 보인다. 국기모독죄를 폐지할 게 아니라면, 특별한 예외를 빼고는 행위 결과만으로 처벌할 수 있게 ‘목적’을 빼는 게 낫겠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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