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을 방문 중이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자신을 “성남시 대통령 이재명”이라고 소개해 동행한 보좌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행히 직원이 “성남시장”이라고 통역해 해프닝은 강의실의 학생들에겐 전달되지 않았다.
이 시장이 스스로를 ‘대통령’이라고 언급한 건 직전 한국갤럽이 발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의 8명 안에 자신이 포함된 결과에 고무되어서였을 것이다. 비록 1%의 선호도이긴 하지만 기초단체장이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됐으니 야망이 컸던 그로선 무척이나 뿌듯했을 것이다.
그는 대중이 원하고 호흡하는 지점과 이슈를 짚어내는데 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SNS를 적극 활용해 항상 도발적인 문제들을 제기했고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시장 당선 직후 모라토리엄 선언이 대표적이다. 성남시의 모리토리엄 선언은 지자체의 무리한 사업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재정여건이 양호하고 당장의 부채 부담도 없음에도 사실을 부풀렸다며 꼼수로 보는 비난도 많았다. 이 시장도 후에 스스로 모라토리엄 선언은 쇼가 맞다고 인정했다. 대규모 긴축예산이 필요한데 4년 내내 끌려 다니느니 한번에 욕먹고 처리하는 게 낫다 싶었고, 충격적으로 실상을 알리는 게 필요해 던진 승부수였다고.
최근 이 시장이 맞장을 뜨며 호기를 키운 상대는 홍준표 경남지사다. 홍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에 맞서, 무상공공산후조리와 무상교복 등 정반대의 복지확대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논쟁과 주목을 즐기는 건 홍 지사도 뒤지지 않는다. 홍 지사는 지난달 말 “지금은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며 모진 비난을 일축하며 무상급식 중단을 밀어붙였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어 무상급식 중단은 그를 전국적 이슈의 중심에 서게 했다. 대권을 꿈꾸는 홍 지사는 욕을 먹든 말든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 자체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비난엔 꿈쩍도 않던 홍 지사가 최근 기세가 많이 죽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슈를 즐기는 그로서도 이번 이슈만큼은 힘겨워 보인다.
최근 서울의 모 구청장은 기자들 몇 명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서울시장에게 서운한 게 있었지만 오늘부터 지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시청에서 하는 걸 보니 너무 어이없어 박 시장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란다. 강남구청장이 지난 6일 시청에서 관내 주민들과 벌인 농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같은 구청장이 보기에도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 구청장은 이전 구룡마을 개발을 놓고 박 시장과 날을 세웠고 결국 강남구가 추진해온 공영개발 방식을 관철시켰다. 신 구청장 입장에선 서울시장을 상대로 거둔 승리라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번엔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 이익을 왜 송파구 땅인 잠실운동장을 포함한 개발에 쓰려느냐고 따지고 나왔다. 강남구에서 생긴 돈이니 온전히 강남구에 쏟다 부어야 한다고 시장실 앞에서 농성을 벌인 것이다. 서울시가 해당 부지의 용적률을 250%에서 800% 이상으로 높여주는 건 미래의 서울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일진데 그 결실을 시 전체와 나눌 생각은커녕 강남구만 독식하겠다는 주장은 결국 욕만 잔뜩 먹고 말았다.
욕먹는 걸 감수해가며 주목을 받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생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정치인이 가장 무서운 건 잊혀지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끊임없는 좌충우돌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거물과 치받으며 몸집을 키워나가는 건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한 전투력은 기존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변화의 동력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나치면 괜한 ‘똘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 특히 지역살림을 책임지는 단체장에겐 더욱 그렇다.
진정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면 사회를 찢고 헤집는 악역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사회부 이성원 차장대우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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