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시절 한국은행 독립에 앞장선 김건 전 한은 총재가 17일 오후 10시4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씨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1년 한은에 들어가 외환관리부장 조사1부장 자금부장 부총재 은행감독원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이후 83년부터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6공화국 노태우 정부 초기인 88년 친정으로 돌아와 4년간 17대 한은 총재를 지냈다.
고인은 한은 총재 재임 시절, 한은 독립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민주화 바람이 불던 88년 11월 14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부 여당이나 야당의 한은법 개정안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거리가 있다”라며 한은 독립운동의 총대를 멨고, 이후 한은 직원들은 총재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뒤 중앙은행 중립성보장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전국에서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당시 ‘금융통화운영위원회’(현 금융통화위원회)는 지금과 달리 재무부 장관이 의장을 맡고 있었다. 재무부 장관이 직접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입김에 따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재할인율 결정 등 주요 안건을 처리하는 구조였다. 김 전 총재의 강단 있는 의견과 한은 직원들의 서명운동은 10년쯤 뒤인 97년 말 한은법 개정을 위한 기반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고인은 1950년 한은 설립 후 한은법이 개정(97년)되기까지 4년 임기를 모두 채운 총재 4명 중 1명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광일씨와 재민(동의대 국제협력단 교수) 성민(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황민(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씨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남 천안공원이다. (02)3410-3151.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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