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광장 구텐베르크 동상

읽고 생각하기는 공교육의 오랜 핵심

디지털 세상에도 이런 기초교육 중요

프랑스와 독일 접경 지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 스트라스부르는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연예인 여행기 ‘꽃보다 할배’ 덕분에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국내 관광객이 특별히 방문하지는 않는 그런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스트라스부르는 역사 깊은 중세도시이고, 유럽연합 의회를 비롯해 크고 작은 국제기구나 단체들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되는 알자스-로렌 지역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전쟁 때마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소유권이 수차례 바뀌어 왔고, 가장 최근의 전쟁, 2차대전 후에는 지금까지 프랑스 영토로 인정되고 있다. 아마 일본 같았으면 자국 교과서에 스트라스부르는 우리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을까.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미로같이 꼬불꼬불한 골목을 돌다 보니 탁 트인 광장이 나온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지 도시 한 가운데는 이런저런 행사로 사람들이 모이거나 주말에 장이 서는 광장이 있다. 그리고 광장 한복판에는 그 도시를 빛낸 유명인사의 동상이 자리 잡게 마련이다. 그 자리는 십중팔구, 칼을 뽑아 들고 말 위에 앉아있는 왕이거나, 장군, 귀족, 아니면 위기 상황에서 시민과 도시를 구한 영웅이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 동상의 인물은 창이나 칼 대신 책을 한 권 펼쳐 들고 서 있다. 바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그였다.

언젠가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금속활자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 사람들은 구텐베르그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순간 목청 높여서 우리가 먼저 발명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환기시키고자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누가 먼저 발명했냐는 것보다는 누가 제대로 사용했냐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과거의 지식을 보존하는데 금속활자 기술을 사용한 데 반해 그들은 출판산업이라는 그 당시 기준으로는 첨단산업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구텐베르그 동상 가까이 다가갔다. 동상이 세워져 있는 하단에는 사방 네 면 각각 청동 부조가 박혀있다. 그 중 한 면을 들여다보았다. 중앙에 인쇄기가 놓여있고 그 주위에 동네 유명인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경이로운 표정으로 인쇄기를 쳐다보고 있다. 방향을 돌려서 다른 한 면을 들여다 보았다. 비슷한 장면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광경이 눈에 띈다. 인쇄기 밑에 어린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이들은 소란스런 주위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고 독서에 푹 빠져 있다. 이때부터 세상이 바뀐 것이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 얼마나 권력이 큰지 보다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기술만 터득하면 타고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속활자 인쇄술 이후의 세계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문화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무료에 가깝게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개개인이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다.

글을 읽고 쓰고 사고하는 능력. 기초교육, 혹은 리터러시 교육이라고 부르는 이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은 지난 200년 간 공교육의 핵심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춘 500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 기준도 읽고 쓰고 사고하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있다.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이 디지털화의 핵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있다.

컴퓨터가 대중화되던 초기, 사회는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 교육을 강요했다. 그래서 지금 30, 40대인 당시 아이들은 주판학원과 암산학원 대신에 베이직 프로그래밍 학원으로 내몰렸다. 그런데 최근 다시 소프트웨어 교육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예전의 단순한 프로그래밍 교육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읽고, 쓰고, 사고하는 능력과 더불어 어떤 능력이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세대의 개인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능력일까. 디지털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기초교육, 리터러시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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