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정치ㆍ영토 갈등 심해
아시아 공동안보기구 하나 없어
“국제사회가 개입해 끝난 한국전쟁은 한반도 내부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김학재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 대학원 전임연구원은 최근 서울 마포구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열린 ‘얼어붙은 냉전의 평화, 우리는 어떤 평화를 갈망하는가?’ 특강에서 정전체제 해소를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강연은 한반도 분단의 원인을 나약하고 성급하게 봉합된 평화, 즉 판문점 체제로 지목 그의 책 ‘판문점 체제의 기원’(후마니타스 발행) 출간에 맞춘 것이다. 한국전쟁의 책임을 따지기보다 분단을 야기한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에 주목한 이 책은 분단 문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김 연구원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내부 폭력 사태로 수 많은 포로들이 사망한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 문제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정전 협정을 주도한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에 주목하게 됐다”고 연구 계기를 밝혔다. 1951년 정전협상 시작 후 유엔이 “각 포로들이 출신과 상관없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심사하겠다”고 주장하며 포로송환 협상이 2년간 교착되는 가운데, 거제 포로수용소에서는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의 극한 갈등, 심사 거부와 유혈 진압이 속출했다. 수용소장이 친공포로들에게 납치돼 가혹행위 재발 방지 각서에 서명하고서야 풀려난 사건도 있었다.
김 연구원은 “우리는 단지 남북의 전투가 중지된, 총 쏘는 것을 멈춘 가장 낮은 수준의 평화를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문제로 느끼지 않는 단계에 와 있다”며 “한국정부는 당시 정전협정에 서명을 한 주체조차 아니기 때문에 더 나은 평화를 추구하고 싶어도 당장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태”말했다.
김 연구원은 “아시아가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민족주의 안에서 갈등하고 경쟁하는 상황은 한국전쟁이라는 격렬한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전쟁에 뛰어든 중국의 존재에 당황한 미국이 유엔을 대신해 해결자로 나선 뒤 국제법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주도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판문점 체제가 성급히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2차 대전 후 처리가 졸속으로 진행되면서 정작 당사자인 남한은 협상에 참여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각종 아시아 영토 분쟁의 씨앗이 고스란히 남았다”며 이 때문에 “아시아는 유럽연합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공동안보기구 하나를 가지지 못하는 ‘아시아 패러독스’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민간 차원의 교류와 분업을 확대해가는 가운데 함께 의존하고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해야 한다”며 “남북한 역시 높은 수준으로 차단된 교류 여지가 조금만 더 열려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일찌감치 국제기구에서 입지를 넓혀온 일본과 달리 한국은 2000년대 이후에나 국제기구에 진출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미국의 요구에 따른 충실한 역할을 하는데 만 그칠 뿐 남북한 정전체제 해소 방안 등을 의제로 만들지 못했다”며 “유엔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동아시아의 세가지 평화체제’ ‘20세기 내전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등을 낸 김 연구원은 서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베를린자유대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13년부터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지구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국제법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특히 전쟁과 평화에 관한 제도들의 형성과 변화에 주목해 독일, 일본, 한국의 근대성의 흔적들을 연구하고 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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