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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 학생들, 국가 차원서 10년 이상 치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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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 학생들, 국가 차원서 10년 이상 치료 필요하다"

입력
2015.04.1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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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안 되고 후속대책 없어, 유족·생존자 등 집단적 트라우마

매년 참사 날 되면 고통 반복 우려, 정부 '5년 치료 지원'으론 한계

美정부, 9·11테러 피해자 치료 지원 "학생들 일상복귀 참사 수습 시금석"

197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州) 웨인카운티 자치구. 산악관광지대인 이곳의 버펄로 크리크(Buffalo Creek) 계곡을 막은 댐이 무너지면서 쏟아져 내린 물과 토사가 인근 14개 부락을 덮쳐 125명이 죽고 4,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최악의 참사가 났다. 주민들은 참사 이후 오랫동안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빠른 복구와 지속적인 치료를 지원하겠다던 자치구 시장의 약속이 공언(空言)에 그치면서다. 재난 발생 3년 후 신시네티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의 방문조사 결과, 생존자의 80%가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였다. 심지어 주민들은 누구 하나가 ‘물 밀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하면 집단적으로 허둥거리는 트라우마의 늪에 빠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아직도 치료를 거부하는 등 참사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치료를 가로막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인재로 피해를 당한 이들의 치유를 위해서는 진실규명이 전제돼야 한다”며 “유가족이 원하는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복귀를 위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진실규명이 피해자 치료의 전제조건”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의 버펄로 크리크의 예처럼 인재(人災) 발생 시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규명과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집단적 트라우마가 지속돼 치료단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버펄로 크리크 참사 당시 자치구 시장 등 정치권에서 신속한 복구와 치료지원 등을 약속했지만 약속 불이행으로 치료가 이뤄지고 있던 이들마저 상태가 악화돼 집단적 트라우마가 발생한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이 잊혀지는 것에 대해 억울함 마음을 갖고 있다”며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울장애, 범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광장공포증 등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애도반응, 외상후 스트레스 시달려”

현재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정신적으로 어떤 고통을 받고 있을까. 김지훈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 교수는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애도반응ㆍ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신적 치료 자체를 거부하며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애도반응은 대상 상실, 즉 가족 구성원이 사망했을 때 발생한다. 정서적으로는 분노 불안감 우울감 죄책감 등이 일어나고 신체적으로는 손발이 저리거나 무기력해지고 소리 등에 예민해진다. 가슴 조임이나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하며, 잠을 못 자고 식욕이 떨어져 영양섭취도 부실해진다. 한숨을 계속 쉬고, 멍하게 있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믿을 수 없다’ 등 자책을 하거나 현실을 회피하는 일도 발생한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이라 더 분노하고 공격적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난 등으로 외상을 당하면 누구나 겪는 과정인데 사람들이 세월호라는 틀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가두고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문제도 심각하다. 참사를 경험한 이들은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반복적으로 꿈이나 생각 등을 통해 참사를 떠올린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망자와 관련된 장소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최 교수는 “참사 초기보다 1년이 경과한 지금 외상후 스트레스 등 치료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음주에 빠져 알코올중독이 되면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다.

‘기념일 반응’도 심각하다. 기념일 반응이란 재난 발생 후 정신과적 상담과 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됐다가 기념일이 다가오면 다시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최 교수는 “세월호 참사처럼 사태가 잘 해결되지 않아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면 기념일 반응이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생존학생들 지속적 치료 필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생존 학생들의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현수 교수는 “최근 단원고에서 생존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는 스쿨닥터에게서 ‘학생들이 1년 전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조짐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며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치료가 이어지지 않으면 매년 세월호 참사 날이 다가오면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또 “청소년기에 엄청난 인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인재를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며 “단절과 고립이 지속되면 성장을 해도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병철 교수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고립되면 사회에 대한 신뢰를 상실해 고립감, 우울감, 피해의식 등이 쌓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학생들의 빠른 일상복귀는 세월호 참사 수습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윤호경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생존학생들은 친구들을 잃어버린 상실감, 혼자 살아 나왔다는 자책감 등에 시달리고 있는데 청소년기 특성상 어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며 “최소 10년 이상은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 치료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9ㆍ11테러 미국과 달리 5년 한정으로 치료지원

하지만 현실에서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에 대한 지속적 치료관리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유가족과 생존자 치료지원을 5년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4ㆍ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유가족과 생존자 등이 의료기관에서 검사 또는 치료를 받을 경우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2020년 3월 28일까지 지원토록 했다. 이마저도 배상금에 해당 정신질환 등의 진단 및 치료에 관한 배상금이 산정ㆍ포함된 경우에는 지원을 하지 않는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관련 위원회 심의를 거쳐 9ㆍ11테러 피해자 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며 “다른 사고들과의 형평성 문제, 이중지원 논란이 있지만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한 치료는 범국가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병철 교수는 “인재로 인한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정신적 후유증은 피해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외상후 스트레스 등 정신적 증상이 사고 발생 후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신적 치료지원을 5년으로 한정하면 치료 접근성이 떨어져 향후 더 큰 비용이 투입될 수 있다”고 했다. 최수희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라며 “진상규명과 후속대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 치료적 개입이 늦어져 증상악화는 물론 삶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시간 지났으니 그만…' 세월호 상처 헤집는 말밖에 안 돼

정신전문의학과 전문의들은 세월호 피해자는 물론 우리 국민들도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정치문제로 변질되면서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걸렸다는 것이다. 최수희 교수는 “국민들이 속으로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사태해결이 되지 않자 피로가 쌓여 분노와 짜증을 내는 재난 초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논리 등으로 진실규명과 후속대책이 이뤄지지 않자 세월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축적돼 현실을 회피하고 억압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사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상실도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키웠다. 김현수 교수는 “세월호 참사 자체의 충격과 함께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충격이 더해져 사회 전체에 대한 불안과 신뢰가 상실돼 국민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여기에 진상규명까지 더디게 되자 짜증과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라는 정신적 충격을 딛고 피해자들과 상생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무원칙적인 비난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지훈 교수는 “인재로 인해 가족을 상실한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며 “시간이 지났으니 빨리 털고 일어나라는 식의 충고는 상처를 헤집는 것 밖에 안 된다”고 했다. 김현수 교수는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아 정부가 ‘국민안전다짐대회를 개최했는데 결국 세월호 피해자들에게 집단적으로 또 상처를 준 것”이라며 “지금처럼 유가족들이 정부에게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만 증폭시키면 사태해결은 물론 피해자 치료가 요원하다”고 했다. 최수희 교수는 “세월호 피해자들이 일상에 복귀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며 치료를 받아야 국민들도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세월호 피해자라서 더 분노하고 울분을 표출하고 있다는 색안경을 벗고 이들의 아픔과 치유를 위해 힘을 모아야 세월호 비극이 순화될 것”이라고 했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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