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중장 정직 1개월(중징계), B준장 견책(경징계), C준장 혐의 없음.’
현역 해군 중장이 군 골프장 캐디에게 수 차례 춤과 노래를 시켜 물의를 빚은 사건이 최근 발생했지요. 지난달 19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첫 보도(▶기사보기)가 나간 지 한달 만인 17일 해군이 징계위원회를 열고 내린 처분 결과입니다. 해군 장성 3명이 함께 징계위에 회부된 사상 초유의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뒷맛이 영 찜찜합니다. 밀폐된 스크린 골프장도 아니고 백주대낮에 허허벌판으로 트여있는 야외 군부대 시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해군의 대처와 당사자들의 태도, 군의 골프장 운영방식 등 어느 것 하나 탐탁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이 원래 다 그렇지” 하는 자조 섞인 비아냥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입니다.
우선 해군부터 짚어볼까요. 여러 경로로 사건내용을 접한 뒤 일주일간 해군본부에 세 차례나 확인을 거쳤습니다. 대형비리 사건도 아닌데 매일같이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 입장에선 엄청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것이죠. 해군에서 4성 장군인 참모총장 아래 5명에 불과한 3성 장군의 거취와 관계된 사안이니 해군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한 겁니다.
하지만 해군본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확인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발뺌식 답변은 물론이고 심지어 “항간에 떠도는 설에 불과하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해군은 막상 사건이 공개되자 황급히 움직이더군요. 기사가 지면보도에 앞서 전날 밤 인터넷에 떴는데 불과 한 시간만에 해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에게 황급히 보고하고, 다음 날 새벽 감찰반이 현장부대에 출동하는 난리법석을 피웠으니 말이죠.
왜 해군본부가 거듭되는 취재에도 굼뜬 반응을 보였는지는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골프장 캐디들의 하소연을 접한 부대장인 C준장이 상관인 A중장을 의식해 해군 지휘부에 보고하지 않은 겁니다. 사건 은폐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도 C준장은 징계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해군의 설명이 걸작입니다. 이번 징계위는 캐디들에 대한 A중장, B준장의 부적절한 언행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C준장의 보고 여부는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론의 지탄을 의식해 판을 벌였다가 눈치를 보고 슬쩍 접어버린 것 아닐까요?
더욱 기가 차는 건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A중장과 B준장의 반응입니다. 조사 결과 A중장은 일행이 버디를 할 때마다 캐디에게 춤과 노래를 요구했고, B준장은 춤을 거부하는 캐디에게 “엉덩이를 나처럼 흔들라”며 한술 더 떴습니다. A중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려 30회 가까이 군 골프장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군 전체와 후배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으면 이제는 자중할 법도 하건만 두 사람 모두 징계에 불복해 항고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특히 A중장은 징계위가 열리기에 앞서 “이제 계급투쟁을 하자는 거냐”며 “나를 죽이려는 음모다”라고 거세게 반발했다고 하네요. B준장도 여권 실세와의 인맥을 과시하며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솔선수범해야 할 장군들이 이러니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지요.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드실 겁니다. 군 골프장인데 여성 캐디를 고용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아예 캐디가 없었다면 해군 장성들의 ‘갑질’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군에서는 골프장을 ‘체력단련장’이라고 부릅니다. 군인들의 체력을 기르기 위한 시설인데 정작 골프채는 캐디에게 맡기고 다니는 겁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현역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이용하기 때문에 캐디를 고용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2014년 기준으로 현역 군인은 군 골프장 전체 이용객의 14%에 불과합니다. 예비역이 22%이고 절반이 넘는 나머지는 순수한 민간인들입니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셈이지요.
모든 군 골프장에 캐디가 필요하다는 국방부의 설명도 사실과 다릅니다. 국방부와 육ㆍ해ㆍ공군이 운영하는 전국 30개 체력단련장 가운데 충남 논산의 육군항공학교 관할인 창공대 골프장은 지난해부터 캐디를 고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해군과 같은 사건이 우려돼 아예 문제의 소지를 없앤 것이지요.
이처럼 해군 현역 장성들의 군 골프장 캐디 사건은 우리 군의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군은 고위 장성을 보호하기 위해 애써 모른 체하고, 당사자들은 자신의 계급과 직위를 믿고 만용을 부리는 사이 국방부는 아무런 개선노력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각 군의 지휘부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벌하겠다고 입이 닳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우리 군을 향한 국민들의 얼마 남지 않은 관용이 다 바닥날지 궁금합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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