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주도 AIIB 등장에 입지 흔들
500억달러 콩고강 댐 건설 사업
7300만달러 지원하며 공격적 투자
대형 개발 부활로 새 활로 모색
김용 총재 "WB 경쟁력 강화 위해
자금·전문지식 저개발국에 보급해야"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해 설립된 세계은행이 최근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급부상하면서 불거진 존립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세계은행이 지난해 7,300만달러(약 790억원)를 ‘그랜드 잉가’로 불리는 아프리카 콩고강 댐 건설 프로젝트에 지원하도록 승인한 것은 AIIB와 같은 새로운 경쟁자로부터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오랜 기간 맥이 끊겨 있던 대형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용 총재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춘계총회에 앞서 “이 프로젝트는 우리 같은 기관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다”며 “반드시 시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랜드 잉가 프로젝트는 최소 500억달러가 소요되는 대형 사업이다. 콩고강 하류인 잉가에 계획대로 8개의 댐이 완공되면 전력 생산량이 연간 4만㎿에 달해, 아프리카 대륙 절반에 전기를 공급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싼샤댐의 두 배에 달하는 전력량이다.
세계은행은 지난 70년 동안 IMF와 함께 세계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회원국이 188개국으로 지난해 개도국 지원에 650억달러를 썼다. 현재 전세계 131개국에서 1만2,000명의 직원과 5,000명에 달하는 컨설턴트가 교육 기후변화 보건정책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을 담당하며 저금리 융자나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굳건한 입지에 변화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세계은행의 위상은 AIIB가 등장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당장 AIIB가 세계은행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지난 수 십년 주로 반(反)세계화 단체나 환경보호단체와 싸웠던 세계은행이 더 강력한 도전자와 맞닥뜨린 셈이다.
양대 국제금융기구 수장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어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세계경제 성장을 위해 AIIB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김 총재도 “AIIB를 환영한다”고 거듭 환영 의사를 표명했다.
김 총재는 세계은행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역량을 자금력과 전문지식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특히 세계은행의 자금 지원을 많이 받는 중국과 인도가 단지 돈만이 아니라 프로젝트 경험이 축적된 전문지식, 노하우를 더 원한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면서 전문지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도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은행 또는 다른 기관들과 일하면서 선진 제도와 기술을 경험하고 습득할 수 있었다”며 “중국은 현 국제질서 시스템의 수혜자이고 AIIB로 기존 국제질서가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은행의 지원으로 도시개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인더스강 댐 건설 사업에 세계은행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은행의 영향력이 계속 축소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미 재무부 출신으로 오바마 1기 행정부 시절 미 정부와 세계은행 사이를 조율했던 스콧 모리스는 “세계은행이 지금의 발전 모델을 고집한 채 방향을 틀지 않는다면 지속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세계은행이 환경문제 등을 도외시한 채 경제성장과 사회기반시설 프로젝트에만 집중했던 안 좋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고 FT는 전했다.
모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전체 다자개발은행에서 세계은행이 차지하는 자본금 비중은 50%에서 39%로 추락했다. 같은 시기 다자개발에서 민간영역의 역할은 커졌다. 지난해 외국인의 직접 투자가 세계은행 같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한 투자 규모보다 1.7배 많았다.
모리스는 “세계은행은 AIIB가 거론되기 이전부터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아프리카개발은행등과의 경쟁에서 밀렸다”며 “전통적 의미의 개발은행의 역할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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