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강화도 캠핑장에서 끔찍한 화재가 났다. 인디언 텐트 모양의 글램핑 시설에서 불이 나 어린 아이들을 포함해 두 가족이 변을 당했다. 사고 난 캠핑장은 미등록 시설이었고, 글램핑 시설엔 비인가 전기장판과 스티로폼 단열재들이 채워져 있었다. 캠핑이 유행한다 싶으니 우후죽순 캠핑장들이 들어섰고, 캠핑 짐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노린 글램핑도 빠르게 성장했다. 처음엔 텐트, 테이블, 화로 등 기본 시설만 갖추던 글램핑이 단열재에 침대, TV, 욕실까지 거느린 호화 펜션 수준으로 변화했다. 캠핑을 체험해보겠다는 소박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글램핑이 돈벌이와 이색 숙박체험이란 변질된 욕망과 뒤엉켜 커오다 결국 강화도 화재 같은 참사를 불러왔다.
당시 사고를 지켜보며 떠오른 책 한 권이 있다. 영국의 작가이자 방송인이며 진정한 캠퍼인 매슈 드 어베이투어의 ‘캠핑이란 무엇인가’이다.
저자는 자신이 캠핑을 하면서 저지른 온갖 실수를 해학적으로 다루면서 캠핑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캠핑의 역사와 철학과 정신을 통해서 캠핑이 지닌 근본적인 가치를 전해준다. 캠핑이라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행위가 의외로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녔고, 자기가 속한 체제와 시스템과 관례에 대해서 객관적인 거리를 갖게 만드는 행위요, 단순히 육체적인 활동의 범주를 넘어 정신의 성숙에 이르는 깊이 있는 길이요, 부분적인 인간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간으로 가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내가 크게 공감했던 문장은 베두인의 격언이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깝게 하기 위해 텐트 세우는 간격을 아주 멀리 한다’는 베두인의 격언에 따라 저자는 이웃이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 서로가 사적인 가정사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지낼 만큼 멀리 텐트를 친다고 했다. 난민촌과 다를 바 없이 다닥다닥 붙여놓는 대한민국의 캠핑장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비행기 여행이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것들의 총화라면 캠핑은 그와는 정반대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캠핑은 주의하고 깨어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칙칙하고 몽롱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누구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더 확연히 바라보게 만든다.
캠핑을 애호하는 이들에게 캠핑은 자유를 뜻한다. 비판자들에게 그것은 인류가 탈출하려고 몇 천년 동안 무진 애써 온 자연이라는 감옥에 대한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향수를 상징한다.
캠핑에서 가장 힘든 것이 짐 싸는 일이었다. 캠핑을 갈 때마다 왜 이런 생고생을 해야 하나 스스로 묻게 하는 고행이다. 책을 처음 손에 쥔 건 짐꾸리기와 텐트 사이트 구축 등 캠핑의 기술을 얻기 위함이었으나 책을 읽을수록 캠핑을 왜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됐다. 캠핑을 대하는 태도도 분명 달라졌다.
캠핑은 어른들이 즐기는 품위 없는 짓이라고도 한다. 내게 그 품위 없는 짓이 절실한 건 문명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감 때문이다. 이 원고의 마침표를 찍고 나면 드디어 올해 첫 나의 캠핑이 시작된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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