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 작가 코난 도일의 삶 재현
누명 쓴 혼혈인 무죄 입증 다루며
편견으로 경직된 영국 사회 비판
상고법원 설립 등 사법체계 진일보
‘줄리언 반스가 재현한 아서 코난 도일의 삶’. ‘용감한 친구들’에는 이 말 외에 더 이상의 홍보 문구가 필요 없다. 이를 본 독자들이 가질 법한 기대_셜록 홈스의 창시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탐정의 역량, 반스가 댄 캐버나라는 필명으로 입증한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능력_에 소설은 완벽하게 부합한다.
2005년 발표한 ‘용감한 친구들’은 아서 코난 도일의 삶, 그 중에서도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 탐정으로 조지 에들지 사건에 착수했던 40대 후반의 한때에 집중돼 있다. 도일은 홈스라는 불세출의 캐릭터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범죄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의뢰를 끊임없이 받았다. 많은 영국인들이 권위적인 공권력보다 홈스의 창조자를 신뢰했고 도일은 실제로 다수의 사건을 맡아 해결하기도 했다.
조지 에들지 사건은 사무변호사이자 인도 이민자 2세인 에들지가 가축훼손 누명을 쓰고 3년 간 복역한 일이다. 이 사건은 영국 사법 시스템에 최초로 상고법원이 설립되는 성과를 남겼으나 에들지의 이름은 후대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도일의 자서전 한 귀퉁이에 기록된 이 사건을 반스는 방대한 자료 수집을 통해 부활시켰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에 인용된 편지, 신문기사, 정부 보고서, 의회 기록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점잖은 아이로 자란 조지의 집에 어느 날 협박 편지와 새의 사체가 배달된다. 악질적인 장난은 수 년간 지속되고 조지의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조지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이유는 하나, 그가 ‘튀기’이기 때문이다.
조지는 법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믿음의 세계인 성경말씀과 달리 법은 증거와 결론으로 확정되는 자명한 세계이고 그 안에서 안도를 느끼는 조지는 사무변호사가 되어 사회에 첫 발을 뗀다. 얼마 후 가축 난자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법정에 설 때까지도 조지는 법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고하리라 믿었던 사법 체계는 구멍투성이였고 조지는 범죄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7년 형을 구형 받는다. 그리고 이제 아서 코난 도일이 등장한다.
“조지, 전 당신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고, 이제 당신을 만났습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전 당신이 무죄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게 아닙니다. 전 당신이 무죄라는 것을 압니다.”
작가는 도일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지만, 그를 셜록 홈스의 현신처럼 표현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마치 셜록이 살아 돌아온 듯 치밀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수수께끼를 착착 풀어내며, 불의와 편견에 맞서는 탐정의 진면목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할 수 있다. 조지를 범죄자로 내몬 경찰서장 앤슨과 도일이 벌이는 한판 설전은 그 중 백미다.
“미안하지만 탐정소설에 나올 법한 질문을 하시는구려. 독자들이 그렇게 제발 좀 알려달라고 애걸하면 당신은 뻐기면서 답을 해주겠죠.”
앤슨은 도일에게 허구의 탐정소설만 써서는 ‘실제’를 알 수 없다고 빈정대며 자신만만하게 제 추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 내용은 “끔찍한 혼혈의 핏줄”이 모든 사달의 근원이라는 거대한 편견이다.
앤슨이 현실, 굳건한 원칙,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수호한다면, 도일은 상상(문학), 가변적 진리, 식민지와 혼혈을 대표하며 그에 맞선다. 경직된 20세기 영국 사회에서 도일은 진실을 위해 기성 원칙을 뒤흔든 몇 안 되는 인물로, 그 결과는 상고법원 설립이라는 사법체계의 진일보로 드러난다.
원칙 위에 굳게 선 대영제국이 ‘허구’의 탐정을 만들고 ‘영혼’을 신봉하는 자(도일은 죽을 때까지 심령주의자였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은 통렬한 쾌감을 선사하는 한편, 두려운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딛고 선 원칙 중 먼 훗날 폭력으로 판명 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줄리안 반스의 책 중 세 번째로 맨 부커상(매해 영국 소설 중 최고의 작품에 주는 상) 후보에 올랐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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