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에 한 사이즈 줄이기’ ‘뱃살부터 빼셔야겠습니다’ ‘하루에 한 동작 뱃살’…. 이는 동네 헬스센터 홍보 문구가 아니다. 국내 대표 서점인 K문고의 건강 관련 베스트셀러의 목록이다. 서점에 가면 이처럼 다이어트와 관련된 정보를 담은 서적들이 건강코너를 도배하고 있다.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 아름다움 자태를 뽐내는 여성 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를 장식한 책들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환자나 독자들에게 다양한 건강정보를 전해야 할 건강 서적들이 ‘다이어트’ ‘해독주스’ 등 특정 소재들로 채워져 있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책은 시대의 반영이다. 내적 건강은 무시하고 몸매관리, 다이어트 등 외적 건강에 매달리는 세태가 묻어나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최근 들어 해마다 책 수 권을 쏟아내는 ‘다작(多作) 의사’들이 많아졌다. 이들이 내는 신간을 보면 상당한 분량의 역작(力作)들도 적잖다. 환자들을 보면서 매년 2,3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이 가능할까. 몇 년씩 공을 들여 건강에 좋은 정보를 담은 책을 내는 것은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희열이 클 것이다. 그래서 수년 간 자료를 모으고 시간을 쪼개 책상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안타까움은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환자나 독자가 아닌, 자신의 명예나 처세를 위해 손쉬운 방편을 찾아 책을 출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개원의들은 “신문, 방송 등에 소개되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증가한다”며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되면 방송출연 등을 보장받을 수 있어 출판을 서두르는 이들이 많다”고 전한다. 종합편성채널에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한 방송작가도 “출연진을 섭외할 때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의사는 섭외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책이 독자가 아닌 자신을 홍보하는 도구로 전락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집필한 것이라면 그나마 낫다. 한 대필전문 작가는 “의사, 정치가 할 것 없이 주문이 들어와 술 먹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환자와 독자를 위해 한 자 한 자 피와 땀으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처세를 위해 책을 찍어내는 이들에게는 ‘박수 칠 때 떠나라’는 흔한 교훈을 전하고 싶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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