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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조금은 씁쓸한 자동차 운반선의 세계

입력
2015.04.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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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기 평택항 PIRT 자동차 전용부두에 정박한 현대글로비스 센추리호로 기아자동차 모닝이 줄줄이 들어가고 있다./2015-04-16(한국일보)
지난 15일 경기 평택항 PIRT 자동차 전용부두에 정박한 현대글로비스 센추리호로 기아자동차 모닝이 줄줄이 들어가고 있다./2015-04-16(한국일보)

지난 14일 종합물류기업 현대글로비스는 경기 평택항 동부두 맨 끝인 1번 선석(船席)에서 자동차 운반선(Car Carrier) 전용부두 착공식을 가졌습니다.

바로 옆 평택국제자동차부두(PIRT)가 운영 중인 2번, 3번 부두에는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 운반선 ‘글로비스 센추리호’가 정박해 있었습니다. 2012년 2월 인도됐으니 이제 3년 남짓 된 팔팔한 선박입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그랬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센추리호의 엄청난 크기에 숨이 막혔습니다. 총 톤수 5만8,800톤에 길이가 200m, 폭이 32m입니다. 흘수(물에 잠기는 깊이)가 9m라 전체 높이 35m 중 안구에는 26m만 들어왔지만 이것도 10층 건물에 육박합니다. 규모도 규모지만 자동차 운반선은 내부도 일반 선박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배 안에 몰아치는 ‘태풍’

13층으로 이뤄진 센추리호는 1~12층이 차를 적재하는 데크(Deck)이고, 13층은 조타실과 승선원들의 생활공간입니다.

13층과 데크의 차이는 두꺼운 철문을 여는 순간 몸이 먼저 느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듯 강한 바람이 데크에서 계단실로 밀려왔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여기저기 튀어나온 철 구조물에 부딪혀 불상사가 일어날 정도입니다.

바람의 원인은 환풍설비에 있었습니다. 한 층에 수백 대의 차가 들어가다 보니 이놈들이 뿜어내는 매연이 엄청납니다. 환풍기를 안 돌리면 선적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환풍기는 선적 작업 중 밖의 공기를 배 안으로 밀어 넣고, 운항 중에도 데크 내 공기 순환을 위해 일부를 가동한답니다.

여름에는 그렇다고 해도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 선적 작업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환풍을 안 할 수는 없으니 두꺼운 옷을 껴 입고 일합니다.”

자동차 운반선 데크로 들어온 기아자동차 모닝이 주차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2015-04-16(한국일보)
자동차 운반선 데크로 들어온 기아자동차 모닝이 주차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2015-04-16(한국일보)

자동차 운반선 데크에 고박된 차량들. 옆은 10cm, 앞뒤는 30cm 간격이다./2015-04-16(한국일보)
자동차 운반선 데크에 고박된 차량들. 옆은 10cm, 앞뒤는 30cm 간격이다./2015-04-16(한국일보)

극한의 공간 활용성

자동차 운반선의 임무는 한정된 공간에 많은 차를 적재해 파손 없이 목적지까지 배달하는 겁니다. 한 대라도 더 싣기 위해 운전사들은 사이드 미러를 접은 채 신호수의 수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차들을 다닥다닥 붙입니다. 생활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많이 소개돼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현대글로비스 운반선에서는 양 옆으로 10㎝, 앞뒤로 30㎝의 간격을 두고 선적합니다. 이 기준은 운송업체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센추리호는 자동차 운반선 중에서도 PCTC(Pure Car & Truck Carrier)라 필요한 공간 확보를 위해 데크를 퍼즐처럼 조립할 수 있습니다. 12개의 데크 중 2, 4, 6, 8층은 유압장치로 바닥이 이동합니다. 예를 들어 8층 바닥을 올리면 7층은 높이가 2m에서 4m로 늘어나 버스나 중장비도 선적이 가능합니다. 두 개의 데크를 합친 층에는 45인승 버스가 100대나 들어간다고 합니다.

작업자들이 두 개씩 총 4개의 밴드를 걸어 모닝을 고박하고 있다./2015-04-16(한국일보)
작업자들이 두 개씩 총 4개의 밴드를 걸어 모닝을 고박하고 있다./2015-04-16(한국일보)

아직도 노동집약적 산업

자동차 운반선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이 많습니다. 차가 저절로 갈 수 없으니 사람이 수천 대를 일일이 운전해 배에 올려 넣어야 합니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구요.

차 한 대를 싣기 위해서는 운전사, 신호수, 고박(Lashingㆍ화물을 바닥에 고정하는 것) 작업자, 검수원 등 최소 4명이 필요합니다. 12개의 데크 바닥에 고박을 위한 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는 것도 자동차 운반선의 특징입니다. 항해사들은 운항 중에도 매일 데크를 순찰하며 고박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소형차 6,000대를 실을 수 있는 센추리호의 경우 선적 작업 때는 운전사 40여명과 고박 작업자 20여명이 투입됩니다. 점심ㆍ저녁식사와 30분씩 두 번의 휴식시간을 빼고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작업하면 3,000대 정도를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센추리호를 꽉 채우기 위해서는 약 2일이 필요합니다. 윤민선 현대글로비스 평택화물사무소장은 “선박 관련 분야는 아직도 사람 손이 가는 일이 많다”며 “자동차 운송업도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적재를 마친 센추리호는 선장 포함 24명의 승선원을 태우고 출항했습니다. 일본에 들러 차를 더 싣고 칠레를 거쳐 페루 칼라오에 차를 내리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미국 동부에서 다시 차를 싣고 중동까지 배달하는 4개월 이상 걸리는 여정입니다.

센추리호 꼭대기에는 대중탕 규모의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나 긴 항해를 견뎌야 하는 승선원들 복지 차원에서 최근 건조되는 대형 화물선에는 수영장이 옵션으로 들어갑니다.

센추리호 꼭대기의 수영장./2015-04-16(한국일보)
센추리호 꼭대기의 수영장./2015-04-16(한국일보)

자동차 운송업에서 일본이란

자동차 운반선의 규모를 결정하는 국제기준은 RT입니다. 센추리호의 경우 6,500RT인데, 이는 토요타의 소형차 코롤라 6,500대를 적재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1966년 출시된 코롤라의 모델명이 RT-10이었습니다. 이후 시대별로 출시된 모델들은 RT-20, 30으로 뒤에 붙은 숫자들이 바뀌었습니다.

코롤라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0년대 국내 도로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 누적판매량 4,000만대를 돌파했고 아직도 연간 100만대씩은 팔릴 정도로 인기가 식지 않았습니다. 단일차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라는 영예를 안은 만큼 대부분이 수출됐고 그 영향으로 지금도 RT라는 기준이 통용됩니다.

자동차 운송업은 여전히 일본이 주름잡고 있습니다. 업계 1~3위인 NYK, MOL, K-Line은 모두 일본계 업체입니다. 현대상선의 자동차 해상운송사업부문을 흡수한 유럽계 유코카개리어스가 4위입니다. 용선(임대선박) 37척을 비롯해 자동차전용선 59척을 운항 중인 현대글로비스는 업력이 10여 년에 불과하지만 현대ㆍ기아자동차 수출 물량에 힘입어 단기간에 5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일본계가 약 40%, 유럽계가 약 33%입니다. 현대글로비스 비중은 9% 정도입니다. 아직도 일본차 수출입 물량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입니다. 잠시 휘청거리긴 했지만 일본 자동차산업의 기반은 여전히 튼실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자동차부두에서 적재를 기다리는 차량들. 평택항 2, 3번 부두에는 약 1만대를 세워 놓을 수 있다./2015-04-16(한국일보)
자동차부두에서 적재를 기다리는 차량들. 평택항 2, 3번 부두에는 약 1만대를 세워 놓을 수 있다./2015-04-16(한국일보)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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