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만 3,000만부 이상 발매된 만화 ‘데스노트’가 6월 국내 뮤지컬로 선보인다. 설경구, 최민식 등 스타군단을 거느린 씨제스엔터테인먼트의 첫 뮤지컬 진출작으로, 일본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호리프로와 손을 잡았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뮤지컬을 연출하는 쿠리야마 타미야(62) 전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은 16일 도쿄 신바시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을 맡고 나서 만화 원작과 영화를 봤다”며 “독특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가 교묘하게 독자를 매혹시키고 질리지 않게 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데스노트에 이름이 적인 사람은 40초 안에 죽는다’는 기발한 설정에서 시작한 작품은 노트를 줍게 된 법대생 야가미 라이토와 라이토를 추적하는 괴짜 엘(L)의 팽팽한 지능싸움, 이 과정에서 라이토와 엘이 광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에서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뮤지컬 ‘쓰릴미’ 등을 연출하며 인연을 쌓은 쿠리야마는 “원작의 큰 틀을 유지하되 긴 만화의 다이제스트 버전으로 만들지는 않았다”며 “엘과 라이토 두 사람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극을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사람을 죽이는 데스노트처럼) 쉽게 얻은 정답은 인간을 성장시키기는커녕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엄숙한 작품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원작도 투철한 엔터테인먼트라서 공연 장르로 연극이 아닌 뮤지컬을 선택했으니까요.”
도쿄 닛세이극장에 오른 일본 공연은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미니멀한 철제 무대는 화려한 기교나 장치 없이 차분하게 원작을 형상화했다. 라이토의 방은 책걸상과 방문으로, 엘의 은둔처는 모니터 6대로 꾸몄고, 류크와 렘 등 사신들의 공간은 오케스트라 피트석을 둘러싼 형태의 돌출무대로 만들었다. 구부정한 자세와 기이한 표정으로 놀라운 추리력을 과시하는 엘 등 원작 캐릭터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주인공들은 매력적이다. 사신 류크 역의 오시다 코타로는 유머러스한 표정과 노래로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다. 일본에서 개막한 지 10일밖에 안 됐지만 원작의 지명도가 워낙 높은 터라 1,200석 객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일본의 뮤지컬은 전통적으로 캐릭터 중심이지만 브로드웨이 스타일을 입혀 음악과 극전개를 강화했다. ‘지킬 앤 하이드’ ‘황태자 루돌프’ 등으로 친국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의 각본을 맡은 아이반 멘첼 등이 참여했다.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인 와일드혼의 음악은 이번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빠른 비트에 장·단조를 급박하게 오간다. 문제는 일본의 출연 배우 전원이 ‘고음불가’에, 엔카(演歌) 풍의 창법을 구사해 뮤지컬 넘버의 수준을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라는 사실. 단촐한 무대 역시 다소 심심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6월 20일 성남아트센터에서 개막할 한국 공연에는 아이돌 가수 김준수(엘),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뮤지컬 배우 홍광호(라이토)가 캐스팅돼 이 같은 치명적 약점은 상쇄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선아(미사·라이토의 여자친구), 박혜나(렘·여자사신), 강홍석(류크·남자사신) 등 정상급 배우들도 나선다. 한국 공연에서는 1,800석의 성남아트센터에 맞춰 무대 일부도 바꿀 계획이다.
쿠리야마 연출가는 “김준수와 홍광호 모두 한국의 대스타라고 들었지만 나에게는 두 사람이 얼마나 이 역할에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제가 그리는 그림을 배우들에게 명령하는 연출가는 아닙니다. 데스노트의 두 주인공이 심리전을 하는 것처럼, 저도 한국에 가면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부딪쳐 끌어낸 심리를 작품에 반영할 겁니다. 한국의 데스노트는 일본의 카피본이 아니라 한국만의 작품이 될 겁니다.”
도쿄=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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