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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모래강 아홉 굽이가 여기에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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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모래강 아홉 굽이가 여기에 있었음을

입력
2015.04.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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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영주댐 공사 이후 모래층이 5m가량 낮아지면서 전통가옥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무섬마을의 평온함이 조금씩 위협을 받고 있다. 영주=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관광객이 경북 영주의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영주댐 공사 이후 모래층이 5m가량 낮아지면서 전통가옥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무섬마을의 평온함이 조금씩 위협을 받고 있다. 영주=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지포(芝浦) 동저(東渚) 금탄(錦灘) 구만(龜灣) 운포(雲浦) 전담(箭潭) 용추(龍湫) 송사(松沙) 우천(遇川). 이것은 사라져가는 이름의 목록이다.

전국에 이름난 구곡(九曲)이 허다하지만 모래강에 구곡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경북 영주의 운포구곡이 유일하다. 남으로 흐르던 물길은 동으로 꺾이고 서로 흐르는가 싶다가 북으로 되감는다. 11km 구간에서 6개의 S자를 그리고 4개의 물돌이 마을을 만들었다. 하필이면, 한 굽이 돌 때마다 부드러운 물살이 부려놓은 고운 모래가 눈부시던 이곳 한 가운데에 영주댐이 들어섰다. 물에 잠기는 상류는 말할 것도 없고 바로 하류 강바닥도 모래대신 돌덩이들이 날카로운 부리를 드러냈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는 뿅뿅다리. 원래는 철판 구멍으로 물이 퐁퐁 올라온다고 '퐁퐁다리'로 불렸다.
회룡포마을로 들어가는 뿅뿅다리. 원래는 철판 구멍으로 물이 퐁퐁 올라온다고 '퐁퐁다리'로 불렸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영주댐 건설로 훼손된(되고 있는) 내성천으로 떠나는 여행은 현재진행형 다크투어리즘이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말하는 게 낫겠다. 최후의 모래강 내성천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더 늦기 전에 가보라고. 우리에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21C 최초의 수몰지 금강마을, 곱디고운 모래는 찾을 길 없고

영주댐 수몰지구 영주시 평은면 평은정류소에 물에 잠길 집과 마을을 떠날 주민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영주댐 수몰지구 영주시 평은면 평은정류소에 물에 잠길 집과 마을을 떠날 주민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담수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물에 잠길 금강마을이 영주댐 뒤편에서 마지막 봄을 맞고 있다. 영주댐이 세워진 곳은 내성천에서도 경치가 가장 뺴어난 운포구곡이 있던 자리다.
담수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물에 잠길 금강마을이 영주댐 뒤편에서 마지막 봄을 맞고 있다. 영주댐이 세워진 곳은 내성천에서도 경치가 가장 뺴어난 운포구곡이 있던 자리다.

평은면 금광리는 찬란한 봄볕대신 쓸쓸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면소재지였던 이곳에 지금은 10여 가구만 남았다. 올해 말에는 담수가 시작된다니 여름이 가기 전에는 떠나야 한다. 매점을 겸하고 있는 평은정류소에는 작은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명잣댁, 수구리댁, 보름골댁, 원구댁 등 21세기 최초의 수몰이주민들이 빛바랜 사진 속에서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거룩하신 조상님들께서 이룩하신 광대한 농토는…100가구 넘게 유자손하던 금강마을을…다 버리고 떠나야 하다니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 이후남 할머니의 ‘허심가’를 새긴 유리창에도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대대손손 이어오던 삶의 흔적도 물속에 잠길 날이 머지 않았다.

이곳에서 평은역(폐역)으로 가는 고갯마루에 오르면 영주댐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담수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잠기게 될 금강마을을 물길이 다시 한번 넓게 감싸며 돌고 있다. 400년 인동장씨 집성촌이다. 행정지명은 금광리지만 금강마을로 불리게 된 연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수몰지역 유물발굴 조사로 밝혀졌다. 마을에 금강사(金剛寺)라는 절이 있었고, 깊이 10m 우물 터와 보물급 유물이 다수 나왔다. 문화재 조사는 공사 시작 전에 마치는 게 상식이지만 이곳에선 댐이 다 완공된 시점에야 조사가 마무리됐다. 댐 공사를 어떻게 밀어붙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운포구곡의 제7곡 금탄과 6곡 구만, 5곡 운포가 3면을 감싸고 있던 금강마을의 아름다움은 이미 찾을 길이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다.

댐 바로 아래 미림마을도 다르지 않다. 수몰은 면했지만 미림교 아래 곱디고운 모래사장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돌부리가 드러났다. 5~25m 깊이의 모래층으로 형성된 내성천의 미래를 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하다.

작은 하회 무섬마을은 여전히 평화로운데

마을 건너편 전망대에서 본 무섬마을 전경
마을 건너편 전망대에서 본 무섬마을 전경
모래가 쓸려 내려가면서 무섬마을 입구 수도교는 2단으로 보강공사를 했다.
모래가 쓸려 내려가면서 무섬마을 입구 수도교는 2단으로 보강공사를 했다.

운포구곡은 영주댐으로 망가지기 전까지만 해도 관광지로 주목 받지 못했다. 주민들도 강은 으레 이런 모습이겠거니 하며 국내 유일 모래강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 4km 하류의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이 관광지로 알려진 것도 10여 년에 불과하다.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 집성촌으로 한때 100가구가 넘는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100여 년 안팎의 전통가옥이 45채 남아 있다. 태백산 줄기에서 시작한 내성천에 소백산 자락에서 흐르는 서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태극모양으로 산과 내가 어우러져 작은 하회마을로도 불린다.

무섬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너나없이 얕게 흐르는 모래강으로 가장 먼저 내려간다. 건너편으로 연결한 외나무다리를 걷기 위해서다.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 연결한 다리는 보기보다 폭이 넓어 안정감 있고, 생각보다 물살이 세서 어질어질하기도 하다. 물살과 함께 흐르는 모래는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대부분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되돌아오는데, 무섬마을을 제대로 보려면 맞은편 백사장에서 5분 정도 더 걸어 산정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야 한다. 높지 않은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 물줄기가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고 정갈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렇다 할 즐길 거리는 없지만 백사장과 마을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마음이 푸근해지는 고향마을 같은 곳이다. 왁자한 먹거리 장터는 없지만, 민박을 하는 가정(13가구)에서 국수를 비롯한 간단한 음식과 커피와 차 정도는 맛볼 수 있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무섬마을도 영주댐으로 속앓이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을 진입로인 수도교는 기초가 드러나 2차례나 보강공사를 한 흔적이 뚜렷하다. 모래층이 5m정도는 낮아졌다는 증거다. 궁여지책으로 제방근처 백사장에 심은 버드나무는 여태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다. 모래 알갱이도 많이 굵어져 맨발로 걷기엔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가 됐다. 마을주민 김 모씨는 걱정이 크다면서도 환경단체의 주장은 과장됐다며 불편한 기색이다. 댐 공사 이전에도 지자체의 골재 채취와 산림녹화로 토사 유입이 줄어 강바닥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도 영주댐 공사 이후 급격하게 모래가 줄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모래가 자원의 절반인 무섬마을이 언제까지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회룡포, 모래강 내성천의 마지막 용틀임

내성천의 마지막 용틀임 회룡포 전경. 350도 마을을 감싼 물길과 나지막한 주위 산세가 어우러져 한없이 평화롭다. 영주댐 공사 이후 이곳 모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내성천의 마지막 용틀임 회룡포 전경. 350도 마을을 감싼 물길과 나지막한 주위 산세가 어우러져 한없이 평화롭다. 영주댐 공사 이후 이곳 모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모래강 내성천은 언제까지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
모래강 내성천은 언제까지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

무섬마을을 지나면서 완만한 물줄기를 이어가던 내성천은 낙동강과 합류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크게 용틀임한다. 그 한가운데에 잘록한 허리만 외부와 연결돼 겨우 섬 신세를 면한 회룡포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물길 안쪽은 억겁의 시간 동안 쌓이고 깎였을 모래가 마을보다 넓은 백사장을 형성하고 있어 국내 최고의 물돌이 풍경을 자랑한다. 용이 비상하듯 물길이 휘감아 돌아간다는 뜻의 회룡포 인근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유난히 많다. 마을 북측은 비룡산이고, 제1뿅뿅다리 건너는 회룡마을, 제2뿅뿅다리 너머는 용포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예천군 용궁면이다.

마을의 전경을 보려면 비룡산 정상부근의 회룡포 전망대(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비룡산 뒤쪽 장안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400m만 걸으면 전망대에 닿는다. 등산이랄 것도 없지만 노약자에겐 200여 계단이 다소 부담스럽다. 가장 일반적인 등산코스는 제1뿅뿅다리 앞 회룡마을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다. 약 1.5km, 40분 정도 걸린다. 반대편 용포마을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다. 0.7km, 15분 정도 소요된다.

1999년 지은 전망대는 내성천이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한눈에 담기 어려울 만큼 풍광이 넓어 아찔함보다는 평온함이 느껴진다.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아스라히 들리는 닭 울음 소리와 경운기 소리만이 산상의 고요를 깨뜨릴 뿐이다. 하얀 모래사장 뒤로 섬이나 다름없는 회룡포마을, 마을을 350도 둘러싼 강줄기, 그 뒤로 올망졸망한 산세까지 한 컷에 담으려면 최소 20mm보다 넓은 광각 렌즈가 필요하다. 이럴 땐 휴대전화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이 유용하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회룡포 마을까지 차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회룡마을 주차장에서 100m길이의 뿅뿅다리만 건너면 된다. 차로 가려면 물길을 피해 15km이상 돌아야 한다. 뿅뿅다리 안내문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으로 만든 뿅뿅다리는 원래 ‘퐁퐁’다리였는데 언론에서 잘못 쓰는 바람에 뿅뿅다리로 불리게 됐다”고 적고 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철판 구멍 사이로 모래 속의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강, 내성천은 그런 강이다. 철판의 탄성 소음을 흉내 낸듯한 ‘뿅뿅’보다 조금만 파내도 물이 고이는 모래강의 특성을 잘 살린 이름이다.

회룡포는 예천 제일의 관광지답게 마을 전체를 정갈하게 잘 꾸몄다. 제방을 따라서 만든 산책길엔 배 살구 복숭아 자두 사과 등 유실수를 심어 향과 색을 달리하는 꽃과 열매를 계절 따라 감상할 수 있다. 마을 뒤편 밭에는 유채를 심어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에도 신경을 썼다. 오토캠핑장을 만들어 들판 한가운데서 캠핑을 즐기는 이색공간으로 꾸몄고, 단체 숙박이 가능한 펜션과 식당도 갖추고 있다. 마을을 쉽게 둘러볼 수 있게 스쿠터도 대여하고 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할 만큼 마을은 아담하다. 드넓은 백사장을 걸어보는 것도 내성천에서만 가능한 호사다. 아주 곱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각거리는 모래의 간지럼이 온몸을 자극한다.

회룡포는 전체적으로 외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지만 마을 안내판 사진과 비교해보면 과거에 비해 모래가 많이 줄어든 것이 확연하다. ‘뿅뿅다리’가 없는 오래된 사진에는 백사장이 제방에서부터 완만하지만, 지금은 한 키를 훌쩍 넘는 모래층이 2계단이나 생겼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모래가 하류로 쓸려 내려가는 양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주모와 사공 없어도 삼강주막 정취는 그대로 남아

2005년 88세의 나이로 작고하기 전까지 유옥련 할머니가 운영했던 삼강주막. 지금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상태이고, 바로 옆에 새 주막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2005년 88세의 나이로 작고하기 전까지 유옥련 할머니가 운영했던 삼강주막. 지금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상태이고, 바로 옆에 새 주막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도대체 영주댐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회룡포에서 만난 주민뿐 아니라 내성천 유역의 어느 누구도 영주댐이 왜 필요한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짐작할 뿐이다. 국토부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홍수방지와 용수공급’인데 이곳은 수해가 잦은 곳도 아니고, 물이 모자라는 지역은 더더욱 아니었다. 영주댐 공사는 4대강 사업에 포함돼 2009년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내성천보존위원회 황선종 사무국장은 힘이 부족해 끝내 막지 못했다는 회한에 어깨가 쳐져 있었다. 그래도 댐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최후의 모래강 내성천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지켜낼 가치가 있습니다”

회룡포 바로 아래는 삼강주막이다. 문경에서 내려오는 금천 물줄기가 내성천에 합쳐지고, 봉화 선달산에서 110km를 달려온 내성천이 마침내 낙동강과 합류하는 물길목이다. 3개 강으로 분리된 주민을 실어 나르던 뱃사공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주모도 사공도 없지만 주막은 남아 관광객을 맞고 있다. 경북 북부지역에서 즐겨 먹는 배추전에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추기는 것으로 내성천 여행을 마무리한다. 무섬마을도 회룡포도 ‘바로 지금’모래 상태가 최상이라는 이 기록이 머지않은 장래에 오보이기를 바라며.

영주/예천=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여행메모]

●무섬마을은 경북 영주시내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는 중앙고속도로 풍기IC→5번 국도 안동방향→영주 적서교차로에서 적동리방향 문수로를 이용하면 된다. 남부지역에서는 예천IC에서 928번 지방도를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영주댐은 무섬마을에서 찻길로 6km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무섬마을에서 회룡포까지는 약 40km다. 예천으로 나와 문경방향 34번 국도를 타고 개포교차로에서 924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회룡포와 삼강주막만 가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IC에서 34번 국도로 예천방향으로 가다 용궁면소재지를 지나 924번 국도를 이용한다. ●회룡포전망대만 장안사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뿅뿅다리’로 회룡포마을로 가려면 회룡마을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삼강주막은 회룡마을주차장에서 찻길로 약 10km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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