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고이즈미 사과로 자리매김
22, 23일 메시지 수위에 관심 집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아ㆍ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에 참석키로 확정했다고 일본 정부가 공식 발표함에 따라 아베 총리가 내놓을 메시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2005년 4월 반둥회의 연설에서 “과거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의 국민, 특히 아시아국가 국민에게 다대한 피해와 고통을 줬다”고 사과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고이즈미 담화’에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둥회의 언급을 상당부분 인용했고 담화에선 한국과 중국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추가했다. 이후 일본 총리의 반둥회의 연설은 과거사와 관련된 반성의 메시지 발표의 장이라는 인식이 정착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아베 총리 측은 현지연설의 방점이 ‘주변국가와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찍혀 있음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3일 “적극적 평화주의 아래 더욱 적극적인 기여를 하겠다는 결심을 알릴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려는 분위기다.
담화에 관여하는 아베 측근들의 발언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담화 자문기구 좌장대리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국제대 학장은 지난주 요미우리(讀賣)신문 주최 심포지엄에서 “전후 50년과 70년에 말하는 게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며 “침략사실이 있었는지 어떤지, 그것을 담화에 쓸지 말지, 사과를 할지 말지는 모두 별개”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일본의 침략행위를 아베 총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한 것과는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외교가 안팎에선 아베 총리가 역대정권의 반복된 ‘침략’‘사죄’등을 생략하고 ‘앞선 대전에 대한 반성’만 적당히 언급하는 선으로 궤도를 잡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흘러나온다.
반대로 아베 총리가 반둥회의 연설을 과거사 언급의 ‘통과의례’로 털어버리고 더 중요한 미 의회 합동연설에선 이 문제를 피해가는 전략을 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미국과 일본 언론은 과거 적국이었던 일본이 진주만 공습에 대한 사과를 하는 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미 의회 연설은 한국을 배려하지 않은 채 아베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무대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정부로선 매우 난감한 그림이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아베 정권이 반둥회의에서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과거사 언급을 했으니 미 의회 연설에선 같은 얘기를 반복할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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