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미주기구 정상회의서
오바마 "역사적 만남"에 화답
남미, 베네수엘라 제재 거부감
마두로는 1000만명 서명 들고 참석
미국과 쿠바의 정상이 11일 54년 만에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마주 앉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각국 장성들의 연설이 끝난 후 인근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가 “명백히 역사적인 만남”이라며 “구 시대 역사의 한 장(章)을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쿠바의 인권과 언론의 자유에 관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하면서도 “모든 것이 의제가 될 수 있지만 양국 간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미국과 쿠바 협상 대표단이 자국 정상의 지시를 더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웃음을 터뜨리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두 정상은 비공개 부분을 포함해 한 시간 넘게 대사관 재개설 등 당면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졌다.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로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한걸음 더 다가섰지만, 최근 베네수엘라 경제제재로 대표되는 미국의 중남미 내정 개입에 대한 이 지역 지도자들의 거부감은 여전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 1,000만명의 서명을 들고 정상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를 두고 미국과 남미간의 불화가 앞으로 무엇이 남미 지역을 통합할 수 있으며 진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키워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십여년간 중국의 지원이 늘어나 이를 통한 경제 성장이 가능해지면서 중남미 국가들은 점점 더 워싱턴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자율성을 요구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잘아는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포럼에서 “미국이 아무 때나 남미에 간섭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직접적인 내정 간섭은 물론 세계은행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아메리카 대륙의 반장 노릇을 해 온 것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중남미 정상들은 지난달 미국이 베네수엘라 고위관리들에 대해 추가제재를 단행한 것에 대해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야당인사 탄압과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지난해 인권침해와 부패에 연루된 고위관리 24명에 대해 미국 입국금지와 이들이 관리하는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으며, 그 후속조치로 지난달 7명의 고위관리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에 대해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일방적인 고립 정책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강경 좌파로 분류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는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위협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제재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식품 및 의료 공급 부족과 치솟는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반미로 분산시켜줄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아메리카 12개국의 정치, 경제공동체 조직인 남미국가연합(UNASUR)은 자체적으로 베네수엘라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 남미국가연합은 11일 베네수엘라의 야당 인사 체포와 구금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지난달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가 여야 간의 대화를 통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명을 발표하며 미국의 제재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로베르토 이주리에타 조지워싱턴대학 대학원 학장은 “그 동안 미국이 뒷마당으로 여겨지던 중남미는 중국의 영향력 증대와 각국의 자율성 증대로 인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며 “남미의 현재 모습은 심지어 내년에 보게 될 모습과도 매우 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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