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두산 선수단과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외국인 투수 유네스키 마야(34)가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4연패 뒤 2연승을 달리며 팀 분위기도 180도 달라졌다. 마야는 이날 9이닝 동안 3개의 볼넷을 내주면서도 단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프로야구 출범 35년째를 맞이해 통산 12번째 나온 노히트 노런이었고, 외국인 선수로는 지난해 찰리 쉬렉(NC)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쓴 대기록이었다.
구단 역사로 봐도 노히트 노런은 전신인 OB를 포함해 이번이 두 번째였다. 1호 주인공은 장호연. 그는 1988년 4월2일 사직 롯데전에서 4사구 3개만 허용하는 완벽한 피칭으로 사상 초유의 개막전 노히트 노런을 완성했다. 마야는 그로부터 9,868일, 무려 27년6일 만에 노히트 노런에 성공하며 자신의 이름 석자를 두산 역사책에 아로새겼다. 더군다나 이동석(빙그레ㆍ1988년 4월17일 해태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1-0 게임에서 노히트 경기를 펼치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렇다면 당시 그라운드와 벤치에서 마야의 피칭을 숨죽이며 지켜본 동료와 코칭스태프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닝이 거듭될수록, 포스트시즌보다 더 떨렸다는 주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아봤다.
◇대기록 일등공신 양의지 “마스크를 썼기에 망정이지….”
늘 그렇듯 양의지와 마야는 경기 전 투구 패턴을 상의했다. 마야는 앞선 2경기에서 각각 6이닝 4실점(3월28일 잠실 NC전), 7이닝 2실점(4월3일 사직 롯데전)으로 제 몫을 다했지만 “오늘은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커브를 많이 던지겠다. 커브 사인을 적극적으로 내달라”고 마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양의지는 “알았다”고 답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회 첫 타자부터 마야의 제구력은 기가 막혔다. 평소 140㎞ 중반대까지 나오는 직구는 140㎞ 초반대에서 형성됐지만, 미트를 갖다 댄 곳에 슬라이더, 커브, 직구가 날아 들어왔다. 양의지는 “힘을 빼고 던진 탓인지 제구가 상당히 좋았다. 원래 좋은 투수이지만, 완급 조절로 넥센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며 “7회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내가 다 떨리더라. 마야에게 안 들키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8회부터 노히트라는 사실을 잊으려고 전광판도 안 쳐다 봤다. 그러다가 9회 선두 타자 임병욱이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아차, 이러다 질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부터 노히트 노런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마지막 타자 유한준 선배께는 몸 쪽 백 도어 슬라이더나 직구를 결정구로 할 생각이었다. 일단 볼카운트가 2스트라이크로 유리해서 유인구로 하나(바깥쪽 직구) 뺏는데, 거기에서 헛스윙이 나왔다. 와, 이런 경기는 포스트시즌보다 떨린다.”
◇김태형 감독 “그 눈빛이 말이지….”
이날은 김태형 감독이 정규시즌 들어 처음 등판(?)한 날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8회초 2사 후 8번 김하성의 타석 때 통역과 함께 마운드에 올라가 마야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 마야의 투구수는 정확히 114개. 지난해 7월 크리스 볼스테드의 대체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그가 한 경기 개인 최다 투구수(115개)를 넘기 직전이었다.
“볼 개수가 많은데….” 김 감독은 옅은 미소와 함께 마야의 눈을 쳐다봤다. 그러자 통역을 거쳐 수장의 뜻을 이해한 마야가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상관없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기회다. 무조건 계속 던지겠다.” 김 감독은 마야의 목덜미를 몇 차례 안마해주고 곧장 마운드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교체 생각이 없지 않았다. 노히트 노런이 달려있었지만 위험 부담도 큰 상황이었다. 점수차가 고작 1점밖에 나지 않아 2시간59분 이기다 1분 때문에 질 수 있었다. 그러면 팀에 오는 데미지가 상당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마야가 눈빛으로 말하더라. 도저히 내릴 수 없었다. 이기든 지든 마야를 계속 던지게 해야 했다. 그 눈빛이 말이지, 참.”
◇프런트 “하마터면 주니치에 뺏길 뻔”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무려 136개의 공을 던진 마야는 직구 46개, 슬라이더 55개, 커브 28개, 투심 패스트볼 2개를 뿌렸다. 지난 시즌을 포함해 앞선 등판까지 그가 주무기로 던진 공은 슬라이더. 커터성으로 우타자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꺾이거나 우타자 몸 쪽을 파고드는 백도어 슬라이더 2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날은 날카로운 슬라이더에다 커브도 일품이었다. 전력분석원 팀의 유필선 과장은 “마야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구종이 몸쪽 슬라이더다. 과연 저렇게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몇이나 될까 싶다”며 “파워 있는 타자들에게 몸쪽 슬라이더는 던지기 힘든데, 마야는 그 곳을 파고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력분석원 정재훈 씨는 “슬라이더뿐 아니라 중요할 때마다 커브 구사율을 높여 재미를 봤다. 상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볼배합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산 고위 관계자는 좀 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마야와의 재계약 과정이다. 이 관계자는 “마야를 잡지 않을 경우 국내 다른 팀에서 데려갈 것이 분명했다. 1순위로 마야와 재계약을 마치고 그 다음에 다른 리그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니퍼트와의 협상을 마치겠다는 게 구단의 의지이자 계획이었다”며 “그런데 일본 주니치에서 작년 11월쯤 마야와 접촉했다. ‘한 번 던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고, 우리 쪽에서는 ‘절대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던지지 말라. 너와 무조건 재계약 할 것’이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웃었다.
◇절친 시몬 “행복합니다”
이날 경기의 시구자는 프로배구 남자부 OK 저축은행의 시몬(28)이었다. 올 시즌 V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쿠바 특급’으로 불린 시몬은 대표팀에서 생활하다 마야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몬은 시구를 마친 뒤 마야와 가볍게 포옹을 했다. 그러면서 “너는 공격적인 투수다. 쿠바에서 던질 때처럼 자신 있게 공을 뿌린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몬은 경기 내내 에이전트, 통역과 함께 마야에게 박수를 보냈다. 클리닝타임이 끝난 이후부터는 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대기록을 기원했다. 마야도 “시몬은 첫 시즌에 우승을 경험했다. 그의 좋은 기를 받아 나도 꼭 승리하고 우승했으면 좋겠다”며 혼신의 힘을 다 했다. 투구수가 120개 넘어간 9회를 되돌아 보면서는 “어떻게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런 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시몬은 마침내 마야가 마지막 타자 유한준을 삼진 처리하자 그라운드로 재빨리 내려갔다. 경기 전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마야와 포옹하기 위해서다. 시몬에게 물었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친구를 응원하더라. 기분이 어떤가.”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너무 행복하다.” 시몬은 V리그 우승 때 못지 않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함태수기자 hts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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