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은 불과 21석. 그나마 임시로 마련한 자리였다. 턱시도도 보타이도 없었고 화려한 축하 공연도 없었다. 예산 부족으로 공동수상자를 위한 트로피를 별도로 마련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후보들은 대부분 굵직했다. 누가 상을 받아도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과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아온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경주’가 대상 등 주요상에서 경합했다. 200명 가량 참석자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예장도 문학의집에서 열린 제2회 들꽃영화상은 작지만 알찬 작은 영화제의 면모를 과시했다.
노련한 감독들의 최신작뿐 아니었다. 신예 감독들의 작품들도 주요 상을 다퉜다. 지난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인 타이거상을 받은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된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도 주요 부문 후보 명단에 올랐다. 지난해 독립영화계가 낳은 수작 중 하나로 꼽힌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도 도전장을 냈다.
들꽃영화상은 영화평론가이자 한국영화 전도사인 미국인 달시 파켓이 주창해 만들어졌다. 국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가 최근 급성장세인데도 이에 어울리는 영화상이 딱히 없다는 인식에서 지난해 출범했다. 파켓은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으로 이번 행사를 진행했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들의 노고를 다독이고 성과에 화답하는 자리이니 화려한 스타들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편견은 금물. 배두나(‘도희야’)와 문소리(‘자유의 언덕’), 신민아(‘경주’) 등이 여우주연상을 두고 경쟁했고, 일본배우 카세 료(‘자유의 언덕’)와 박해일(‘경주’), 송새벽(‘도희야’) 등이 남우주연상을 놓고 다퉜다. 상업영화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상 등 주류 영화상 못지않은 화려한 면면이었다. 치열한 경쟁은 기존 영화상보다 수상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더 유발했다.
파켓은 “주류 한국영화가 정형화 돼가고 있는데 지난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는 뛰어난 창의력과 에너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들꽃영화상 진행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날의 승자는 ‘한공주’였다. 최고 영예인 대상과 여우주연상(천우희)을 거머쥐었다. 홍상수 감독은 극영화감독상을, ‘만신’의 박찬경 감독은 다큐멘터리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족구왕’의 안재홍에게 돌아갔고, 시나리오상은 정주리(‘도희야’) 감독이 차지했다. 명성과 흥행에 기대지 않은, ‘계급장’을 뗀 수상 결과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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