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ㆍ교사 12명 4년간 연구… 中日 역사 도발, 국내선 이념 갈등
안팎으로 역사전쟁의 시대다.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사에 편입하느라 바쁘다. 일본은 미래세대에게 ‘한국이 독도를 침탈했다’고 가르친다. 한국사 교과서는 이념의 싸움터로 쓰이는 처지다. 모두가 ‘승자의 기록’을 움켜쥐려 투쟁하는 가운데 역사교육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역사학자와 교사들이 살펴본 우리 역사교육의 발자취는 한마디로 수난사다. 역사교육연구소 12명의 필자가 꼬박 4년을 공들여 펴낸 ‘우리 역사교육의 역사’(휴머니스트)에 이 같은 현실이 담겼다.
저자들은 각 시대의 역사교육 실태, 시대배경, 역사교육운동 등을 다뤘다. 우리 역사교육의 본격적 고난은 일제 통감부시기에 시작됐다. 수업연한을 줄이고 교과서 검정제를 강행했다. 허신혜 한남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검정 기준은 통감부의 통치 행위를 비방하거나 민족의식을 북돋우는 내용이 있는지 여부였다”고 지적했다. 박범희 서울 중앙고 교사는 “교과서가 천황의 자애로움이나 빛나는 위업 등을 강조하고, 한국인의 나약함이나 대외적 의타성, 고질적인 당쟁 등을 부각했다”면서도 “일제에 저항했던 대표적인 집단이 학생들이었던 것을 보면 조선총독부의 의도가 항상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역사교육을 ‘국민의식 고취’ 도구로 삼기 시작한 것도 일제강점기에 비롯됐다. 권오현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후 한국사 교육을 민족ㆍ국민의식 형성 도구로 활용하려는 과도한 정책적 의도는 이런 황국신민화 정책기의 역사교육 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방 이후에는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사 교육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리면서 이를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민족적 관점에서 한국사의 체계를 세우려는 연구 성과가 축적됐지만 국가주의 교육에 적극 활용됐다”고 봤다. 68년 12월 5일 공포된 국민교육헌장 탓에 학생들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을 줄줄 왼 것이 대표적이다. 72년 국사교육강화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단일민족, 민족의 정체성, 우수한 민족문화의 계승’등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80년대 중반에는 민중사학론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 교사들의 학교 역사 교육 개혁운동이 활발해졌다. 94년에는 제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집필을 위한 준거안에 4?19의거를 4월 혁명으로 적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북한 체제수립 과정 등을 서술하겠다는 내용이 담기자 보수진영이 펄쩍 뛰고 나섰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국정이던 ‘국사’ 교과서가 검정 ‘한국사’로 바뀌면서 이념논쟁은 격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국정감사에서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교과서가 친북, 반미, 반재벌의 관점에서 서술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일이다. 각종 찬반 학회가 열렸고, 2005년 1월에는 뉴라이트 단체 교과서 포럼이 창립되기에 이른다. 교과서 포럼은 2008년 3월 자신들 기준의 교과서를 출간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뉴라이트 교과서가) 적지 않은 사실오류, 이념적 지향으로 인한 근거 불충분한 서술, 편차가 큰 집필수준, 빈약한 자료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며 “당시 집필진 중에는 한국 근현대사 및 한국사 학자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MB정부는 스스로 이념전쟁에 뛰어들어 논란을 키운 것으로 평가됐다. 2008년 정부가 건국60주년 기념사업 DVD에 4?19데모로 표현했다 물의를 빚었다. 또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며 직접 임시기구인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구체적 수정 권고안을 작성해 출판사에 전달했다. 저자들은 수정을 거부하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부담을 느낀 출판사 측이 결국 교과부 수정 지시안을 그대로 반영한 교과서를 정부에 제출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김정인 교수는 “교육 당국이 노골적으로 정쟁과 이념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 행위에 적극 가담해 교육계를 뒤흔든,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심각하게 훼손한 반교육적 처사였다”고 지적했다.
최근 사정은 어떨까. 김정인 교수의 답은 이렇다. “역사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2013년 뉴라이트 인식에 기반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수 많은 오류만으로도 탈락해야 할 책이 ‘정치적’ 검정을 통과했다. 학문적 자존감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상식은 자명하다. 권력 안팎에서 일어나는 정쟁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성과 학문의 중립성을 존중하는 풍토의 조성이 절실하다.”
김혜영기자 shine@h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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