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0㎞씩 40일 동안 걷는 여행을 할 때 일이다. 만신창이의 몸으로 걷고 있었다. 몸은 아침마다 쑤셨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퉁퉁 부은 물집투성이의 발을 신발에 집어넣고 억지로 걸었다. 까맣게 탄 얼굴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몸은 볼품없었다. 매 발자국 마다 ‘도저히 한 발짝도 더 못 걷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한 발자국을 더 갔다. 사람의 몸이 신기한 게 곧 죽을 것 같은데도 그렇지가 않다. 무슨 조화인지 그런 매일에 익숙해진다. 서울에서는 단 1㎞도 걷지 않던 부실한 몸이 어떻게든 적응을 한다. 몸이 좋아진다거나 건강해지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걷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전체 여정의 4분의 3정도 지난 어느 날) 똑같이 쑤시는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했는데 유난히 발이 가벼웠다. 물집 때문에 아픈 것도 거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을 신경 쓰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좀 속력을 내서 걸었다. 그런데 이게 뭘까. 철컹철컹 하면서 로봇이 변신하듯이 몸 속에서 뭔가 반응이 일어나서 몸이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느낌보단 훨씬 선명한 것이었다. 놀랍도록 빨라진 속도에 앞서있는 사람들을 계속 따라 잡고, 나는 나를 시험하면서 날 듯이 걸어 제일 먼저 숙소에 도착했다. 그때의 그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몸 전체가 새로워지는 기분. 어느 날 아침 훨씬 강하고, 단단하고, 빠른 내가 된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연습을 할 때 가장 힘든 건 계속 똑같이 그 자리라고 느끼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재수할 때, 하루에 열 시간은 연습을 했다. 지금도 게을러 질 때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과거다. 무릎 안쪽에 땀띠가 나도록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같은 곡을 수 없이 반복하던 기억이 난다. 한참 연습하다 보면 졸면서도 활이 저절로 움직였다. 나의 가장 치열했던 시간 중 하나다.
아무튼 그때 죽어라 연습을 하는데 정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가끔 그렇게 ‘멈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땐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수십 수백 시간의 연습에도 그 수많은 반복에도 나아지지 않다니. 바다에서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늪에 갇혀 조금씩 바닥으로 가라 앉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던 건 멈추면 그대로 가라 앉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시간은 뜬금없이 찾아왔고, 일단 그 시간이 되면 제자리에서 묵묵히 연습을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조그만 발전에도 기뻐하면서 연습할 맛을 찾는 그런 행복은 없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결국 그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정말 조금도 좋아지지 않다가 급작스럽게 된다. 마치 어떤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건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다가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활을 잡고 소리를 내는데 그렇게 되지 않던 것이 언제 못했냐는 듯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 잊었다가도 금세 다시 살아난다. 그 수 없는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한 계단이 되어 나의 발 밑을 지지해 준다. 계단은 경사보다 미끄러지지 않고 단단하다.
어떤 일에 진전이 없거나 번번히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이 두 가지 일을 떠올린다. 나는 계단을 다지고 있는 중이라고. 지금은 평평한 땅을 다지는 것이라 눈에 띄지도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지만 사실은 그게 단단한 계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 그 계단이 완성되면 나는 그걸 밟고 인생의 한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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