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다큐 사진작가 앨런 하비, 70대에 해녀 따라 잠수 감행
한 달간 해녀 삶 담아 사진집 내
제주 해녀들에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연차로 따졌을 때 중간 이상인 중군, 상군 해녀가 얕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물질이 서툰 하군과 연로한 대상군 해녀를 위해 이들은 일부러 수심이 깊은 곳을 택한다. 희생과 존경으로 단단하게 뭉친 해녀 공동체다. 하지만 이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현재 제주 해녀의 수는 5,000여명. 갈수록 줄고 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앨런 하비와 제주 해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에세이 ‘제주 해녀’(태학사)가 출간됐다. 하비는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로 구성된 ‘매그넘’ 소속 작가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40편 이상 작품을 게재한 대표 작가다. 2016년 제주 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제주도가 기획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하비는 지난해 11월 한 달간 제주에 머물며 해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가 처음 해녀를 본 것은 2013년 남해에서다. 아리랑TV의 의뢰로 한국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온 그는 산소 마스크도 없이 20~30m를 잠수해 해산물을 캐 올리는 용감한 여성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시 이를 눈 여겨 본 사진전 기획자 이기명씨가 제주도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게 되면서 다시 하비를 불렀다.
피사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워낙 컸던 터라 준비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됐지만 잠수 여부를 놓고는 이견이 있었다. 당시 70세로 이미 연로한 작가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일단 잠수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나 막상 제주도에 도착한 작가는 금세 말을 바꿔 반드시 물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했다.
“해녀들과 제주도 바다를 보니 마음이 바뀐 거지요. 심지어 한 번 잠수한 뒤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다시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도 마음에 안 든다며 또 들어간다는 걸 저희가 경비 문제로 말렸더니 사비로 들어가겠다고 하더군요. 결국 세 번만 잠수하는 걸로 합의했습니다.” 이기명 감독의 말이다.
그렇게 작업한 수만 장의 사진 중 사진집엔 71장이 실렸다. 떠들썩하게 작업장으로 나가는 해녀들의 등과 잡아챈 문어를 물 위로 치켜들며 기운차게 웃는 얼굴, 모든 일과를 마친 뒤 이부자리에 눕듯 편안하게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은 모계사회의 부족장처럼 위엄이 있다. 거친 삶은 흑백4도의 고난도 인쇄를 통해 더욱 깊이 있게 표현됐다. 사진마다 소설가 현길언씨의 짤막한 글이 곁들여졌다. 제주 해녀 홈페이지(jejuhaenyeo.com)에선 사진집에 실리지 않은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감독은 작가가 작업 내내 해녀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했다고 전했다. “가족을 위해 차가운 바다와 싸우는 해녀들이 작가의 눈엔 위대한 여전사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정작 우리 한국인들은 잊고 있던 강인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지요.”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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