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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글의 눈동자

입력
2015.04.0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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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 질문엔 늘 즉답이 어렵다. 나름의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다. 질문한 사람이 내 대답을 무성의하다 여기게 되거나 선뜻 이해가 안 돼 부가질문이 날아올까 봐 불편해서이다. 그래도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억지 설명을 늘어놓느니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내 답은 대개 이렇다. “그냥 안 쓰면 되죠.”

시건방지거나 잘난 척으로 보인다면 나로선 더 할 말 없다. 잘난 척할 게 뭐 있겠나. 다만, 글이 안 써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를 말한 것뿐이다. 안 쓰면 된다는 건 글을 포기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마감 스트레스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글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글과 나 사이에 항시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가만히 바라보겠다는 뜻이다. 글쓰기는 본디 자발적인 행위지만, 글 자체는 한 개인의 자발이나 의지만으로 일관되게 구축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미묘하게 상호적이다. 내가 글을 쓸 때 글은 나를 들여다본다. 나를 들여다보는 글의 눈이 살아있을 때 나는 비로소 막혀있던 첫 문장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때로 나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글의 눈을 찾아 글 바깥을 둘러본다. 시선이 농익을 즈음, 멀리서 첫 문장이 굴러온다. 특별하지도 빛나지도 않는 일상의 숨겨진 눈동자 속에서, 오래 전 부친 편지의 늦은 답신처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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