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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개봉한 다양성영화 ‘위플래쉬’의 흥행열기가 여전히 뜨겁습니다. 5일 4만1,821명이 관람하며 일일 흥행 순위 4위에 올랐습니다. 5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144만8,364명입니다. 주류 영화의 1,000만 관객 동원이 부럽지 않을 흥행 성과입니다.
‘위플래쉬’의 수입 가격은 5,000만원으로 알려졌습니다. 극장 매출은 5일 기준 115억3,867만8,545원입니다. 극장 몫을 제하면 60억원 가까운 돈이 수입사와 배급사에 떨어집니다. 미국 회사와 흥행 수입을 나누는 계약 조건을 감안해도 로또 당첨 저리 가라 할 잭팟이 터진 셈입니다.
충무로에서는 ‘위플래쉬’의 흥행 대박을 터뜨린 채희승(41) 미로비젼 대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작한 영화나 수입한 작품이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봤는데 생각지도 않은 작품이 효자 노릇을 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채 대표는 1998년 미로비젼을 설립하며 영화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영화 수출 첨병으로 일하다 외화 수입과 한국영화 제작까지 겸하게 됐습니다. ‘어둠 속의 댄서’와 ‘디 아더스’ ‘나비효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을 수입해 꽤 짭짤한 흥행 재미를 봤으나 쓴맛을 본 경우도 많았습니다.
영화 ‘하녀’를 제작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렸으나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를 봤습니다. 최근엔 이렇다 할 흥행작이 아예 없고 빚이 쌓여가면서 미로비젼 위기설이 심심찮게 나돌았습니다. 쪽박 찰 위기에 ‘위플래쉬’라는 대박이 터졌으니 영화 흥행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벼랑 끝 위기에서 살아남은 영화인은 채 대표뿐만 아닙니다. 오래도록 빚더미 속에서 고통 받다가 영화 한 편으로 재활한 경우가 많고도 많습니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 등으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도 지옥 문턱에서 천국의 맛을 본 영화인입니다. ‘왕의 남자’를 연출하기 전 이 감독은 수십억원의 빚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사채까지 끌어 쓴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정도로 재정적 압박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영화사 씨네월드를 운영하며 제작과 수입을 겸하다가 조금씩 쌓인 빚이 화근이 됐습니다. ‘왕의 남자’를 1,200만명이 관람하면서 이 감독은 채무의 사신(死神)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동성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조광수 감독 겸 청년필름 대표도 10년 넘게 영화판에서 버티다 ‘곗돈’을 탄 경우입니다. ‘해피엔드’와 ‘분홍신’ ‘후회하지 않아’ ‘올드미스 다이어리-극장판’ 등 제작을 꾸준히 했으나 돈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습니다. 2011년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의뢰인’이 연이어 흥행하며 돈의 맛을 비로소 느끼게 됐습니다.
최근 충무로 새옹지마의 또 다른 예로는 김용화 감독을 들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오! 브라더스’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를 연이어 흥행시키며 충무로의 블루칩이 됐습니다. 하지만 2013년 여름 개봉한 블록버스터 ‘미스터 고’의 흥행 참패로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한동안 재기불능일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았습니다. ‘미스터 고’ 제작을 위해 김 감독이 만든 시각효과 전문회사 덱스터에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아 손실이 꽤 크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애물단지였던 덱스터가 최근 꿀단지로 변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800만 관객을 웃겼던 ‘해적’의 시각효과를 맡아 실력을 발휘한 뒤 쏟아지는 물량에 비명을 지를 정도라고 합니다. 주로 중국 쪽에서 수주가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중국의 거대기업 완다그룹은 지난 1일 아예 1,000만달러(약 108억원)를 덱스터에 투자했습니다. 우량기업이라는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으니 가능한 투자 유치입니다. 김 감독은 지난달 29일 17세 연하 연인과 화촉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스터 고’의 악몽은 백만년 전 일처럼 느껴질 요즘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종종 “인생은 화투판’이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흔들고 쓰리고를 부르다가도 피박에 광박까지 당할 수 있으니 “아침 화투판에서 일어날 때까지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빚이 많다고 기죽어서도 안 되고 일확천금을 쥐었다고 기고만장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충무로에서 대박과 쪽박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합니다.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영화인들의 삶은 활극과 다름없습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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