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중단에 반발해 학부모들이 솥단지를 걸어놓은 경남 진주 지수초등학교 인근에는 공교롭게도 솥 모양의 바위가 있다. 남강 한가운데 이 바위는 솥뚜껑을 엎어놓은 모양이어서 솥바위(鼎巖ㆍ정암)로 불린다.‘솥바위에서 20리 내에 3명의 부자가 태어날 것’이란 전설이 대대로 내려왔는데 근래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효성의 조홍제 회장 등이 인근에서 태어났다. 다들 지수초등학교 졸업생이다. 거부들이 태어난 동네, 그것도 이들의 출신교에서 아이들 밥조차 공짜로 먹이지 못해 솥단지를 내건 모습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 학부모들이 밥을 직접 해 먹이는 건 급식비가 없어서가 아니다. 한 동네 너나 없는 똑 같은 자식들에게 눈칫밥을 먹일 수 없어서다. 경남 마산의 고교1년생은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누구는 가난해서 공짜 밥 먹고 누군 형편이 좋아서 돈 내고 밥 먹고, 이렇게 되면 학교 분위기가 확 바뀔지 모릅니다. 모두가 같은 밥을 먹는 동안에는 가난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선별복지가 시행되는 순간 대상자는 진짜 가난한 아이가 되어 버립니다… 가장 즐겁고 평등해야 할 급식소에서 ‘누구 밥은 3,200원, 누구 밥은 공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의 한 고교에서 눈칫밥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교감이 급식소 앞에서 다른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급식비를 못 낸 학생들에게 “내일부터는 오지 말라”“너 같은 애들 때문에 다른 애들이 피해를 본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학생의 마음은 어땠을 것이며, 아이로부터 연락 받은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경남 양산의 초등학교 학부모는 경남도의원에게 무상급식 지원을 호소하는 문자를 보냈다가“문자 보낼 돈으로 급식비나 내라”는 핀잔을 들었다.
▦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재원의 효율적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눈치보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밥을 먹게 하는 건 어른들의 의무다. 우리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정도도 못해줄 형편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이 자존감에 상처받고 부모는 모멸감에 시달리게 하는 일만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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