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협치(協治)라 일컫는 거버넌스는 국가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행위자 혹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협력하여 함께 다스리는 정치 모델이다. 기존 관주도의 ‘거느림의 정치’ 혹은 시민의 정치참여를 사실상 간헐적인 투표행위로 국한하는 대의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시민사회 출신 박원순 서울 시장이 이끄는 시정(市政)의 기본 방향이다. 박 시장이 추진해온 서울시 참여예산제와 마을만들기가 대표적인 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또한 대화와 소통, 참여와 자치, 공정과 투명, 상생과 균형을 도정(道政)방침으로 내세우며 거버넌스의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거버넌스가 야권의 전유물은 아니다. 새누리당 소속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민관협치위원회을 설립하여 지사의 권한을 민간과 나누고 긴밀한 협의와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세워 사회적경제를 제주도 협치의 주된 콘텐츠로 삼고자 하기도 한다. 협치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연정(聯政)의 이름 하에 경기도 의회 다수당인 야당과 권력을 분점하고 도내 31개 기초자치단체와 상호 갈등 해소, 정책 공조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상생과 협력의 정치를 실험하고 있다. 아직 여야와 자치단체 간 정책합의, 인사연정, 예산연정 등 주로 관주도 방식에 머물고 있지만 이슈 별로 점진적으로나마 민간 부문을 포용하려는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그럼 거버넌스는 시(市)나 도(道) 수준의 지방 정치 모델에 불과한가? 비록 최근 차기 대선 유력주자들이 주도하는 지방정부발(發) 정치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지만 거버넌스는 기본적으로 지방뿐 아니라 중앙 포함 전반적인 국정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과거 참여정부로부터 현 ‘정부3.0’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 차원의 각종 거버넌스 실험도 진행되어 왔다. 현 지방정부의 실험이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실험들이 우리 정치 전반에 상생과 협력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는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의 변화도 몰고 온다. 오픈 프라이머리와 시민 네트워크형 정당 그리고 시민배심원제 논의 등은 거버넌스 패러다임의 부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제부터 여의도 국회에서 시작된 새정치민주연합의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도 1982년부터 스웨덴에서 개최되어온 시민참여형 정책토론회를 벤치마킹한 행사다.
거버넌스는 전 지구적 차원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 유엔에서 논의가 한창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기존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대체할 새로운 전 지구적 발전 어젠다인데 여기서도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토대로 ‘굿 거버넌스’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필자가 사는 성북구의 김영배 구청장도 참여예산제와 마을만들기 등 ‘주민과 함께 만드는 참여 거버넌스’를 추진하고 있다. 즉 위의 전 지구적 수준으로부터 아래의 풀뿌리 수준에 이르기까지 가히 거버넌스의 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실험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실패와 변질의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민 참여와 협력이 관주도의 들러리와 포섭으로 전락할 수 있다. 거버넌스의 미명하에 추진되는 협력 사업이 실상 지역 혹은 직역 이기주의 혹은 민관 담합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거버넌스의 실험이 대의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혹자는 최근 시도지사들의 거버넌스 실험이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혹은 대선용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며 비판하기까지 한다. 시민의 폭넓은 참여, 민관의 의미 있는 분권, 협치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성과 공공성 제고 등 거버넌스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한 제반 조건과 과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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