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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잃고… 이혼하고… 죄 진 것처럼 지낸다

입력
2015.04.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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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ㆍ트라우마에 극단 선택도

정부가 도와준 것도 없는데

보상금 받고 뭘 더 바라느냐는

주위의 손가락질엔 울분만…

5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103명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 안산 하늘공원에서 희생 학생의 친구들이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5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103명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 안산 하늘공원에서 희생 학생의 친구들이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사고 이후 배는커녕 항공기도 탈 엄두가 나지 않아요. 뭍으로 가려고 항공기에 탑승한 순간, 꽉 막힌 공간에 욕이 절로 튀어 나올 정도로 증세가 심각합니다.”

제주에 사는 왕봉영(45)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소방호스를 몸에 묶고 10여명을 구조해낸 ‘의인’으로 화제가 됐던 화물차 운전기사 김동수씨가 얼마 전 자살을 기도한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도 김씨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 남은 일반인 생존자다. 왕씨는 참사 당일 강원도에서 수확한 감자를 화물차에 싣고 제주의 한 전분 공장으로 이송 중이었다. 그에게 배 타는 일은 익숙했다. 인천과 제주를 오간 것만 수백 차례. 하지만 왕씨는 더 이상 배에 발을 디딜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폐쇄된 공간에 들어서면 목이 조여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참사의 끔찍한 기억이 굴레처럼 남아 끊임없이 그를 옥죄고 있다.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안은 학생들로 붐볐다. 평소 아침을 꼭 챙겨 먹는 왕씨는 그날 오전 7시 선내 3층 식당을 찾았다. 단원고 학생들의 식사시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곤 후미 3층에 위치한 기사용 4인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하려는 찰나 갑자기 배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왕씨는 “배가 45도 가량 기울면서 본능적으로 동료들과 배 후미로 올라갔다”며 “아이들이 걱정됐지만 식당과 선미 쪽에선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소리만 나오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왕씨는 참사로 유일한 생계 수단인 1억원짜리 화물트럭을 잃었다. 물론 지금도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생계의 막막함보다는 “학생들을 남겨두고 나만 살아남은 것 같다”는 죄책감, 그게 밤마다 더 그의 가슴을 후벼 판다.

제주에 사는 생존자 강모(30)씨도 정부의 무관심 속에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강씨는 “국민들은 보상과 치료가 다 되고 생존자들이 고통에서 빠져 나온 줄 알지만 병원에서 무료로 받은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외에 정부가 도와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고 이후 생계를 잃은 강씨는 예정됐던 결혼까지 물거품이 됐다. 현재 감귤 밭을 전전하며 일용직 일거리를 찾아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그는 “울화가 치밀어도 다른 사람에게 내색도 할 수 없다. 주변에서 내게 사고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마치 정신병자처럼 대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두 달 전부터 정부가 경기 안산에 마련한 트라우마센터(온마음센터)를 다니면서 일상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참사 생존자 중에는 김동수씨처럼 주변의 무관심과 정부의 방관 속에 울분을 삭이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은수(42)씨도 그런 경우다. 최씨는 올해 3월 우울증 증세로 병원에서 처방 받은 수면제 40알을 집어삼켰다. 지인이 최씨와 계속 통화가 안 되자 경찰에 신고를 한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그는 지금도 살아있는 게 죽음보다 괴롭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고 세월호 배상 및 보상안이 거론되자 주변에서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한몫 단단히 챙겼을 것’으로 보는 오해의 시선도 억울하다. 그는 “가스비 등 생활비 일체를 감당하지 못하는데도 어떤 이들은 ‘그렇게 보상금을 받고도 뭘 더 받으려는 거냐’고 손가락질을 해댔다”며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다른 화물차 운전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최씨는 화물차 할부금 7,800만원 가량을 갚아야 할 지경이다. 밥벌이 수단을 잃은 그에게 이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최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족을 돌보지 못해 결국 2월 아내와 이혼했다”며 “대학생 딸은 제주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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