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복지재정 누수와 낭비를 막겠다며 지난 1일 이완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첫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방안’이라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한데 사흘이 지나도록 여론 반응이 신통치 않다. 언론과 시민 반응은 차갑고,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불만이 크다. 야심 차게 복지 구조조정의 칼을 빼든 게 무색해진 모습이다.
이번 대책은 정보시스템을 통한 누수 차단, 부적정 수급 근절, 유사ㆍ중복 복지사업 정비, 재정절감 인프라 강화 등 4대 분야를 앞세웠다. 하지만 얻은 것은 총리의 령(令)이요, 잃은 것은 탈락자를 보듬는 촘촘한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기대였다.
올해 최대 화두로 떠오른 세금-복지 논란에 신임 총리가 관련 부처를 통솔, 의견을 취합하고 재빠르게 안을 내놓은 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공개된 것은 이미 조정중인 유사 중복 복지사업 등을 재탕, 삼탕한 정책이 대다수였다. 딱히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더 큰 문제는 부정수급 색출에 재정누수 방지의 방향을 잡는 바람에 가뜩이나 힘든 취약계층을 빈곤의 사각지대로 몰 수 있다는 점이다. 부정 수급자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역설적으로 차상위층 등 빈곤 사각지대의 인구를 양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본보의 복지 관련 기획 시리즈 등 여러 언론이 지적한 바 있다.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깔때기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 한 구청의 복지담당 공무원은 “새는 복지재정 3조원을 잡겠다는 목표가 두렵다”고 말했다. 감시와 지출 축소에만 매달려 정작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야 하는 본래 업무가 뒷전으로 밀릴 게 뻔하다는 것이다. 수급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미달되면 가차없이 탈락시켜야 하는 현실이 뼈아프다는 그는 “재량권을 주지는 못할망정 칼을 휘두르라는 꼴”이라며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복지예산 중 쓰지 못하고 남긴 불용액은 2013년 1,138억 3,300만원에 달한다. 긴급지원제도에 대한 홍보부족과 대상자 추계 오차 등으로 마땅히 집행되어야 할 돈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총리실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데, 왜 쌍심지를 켜고 어깃장을 놓을까 당황스럽고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 복지 전달을 담당하는 일선 현장의 목소리가 배제된 탁상행정이 얼마나 큰 오류를 파생시킬지를 되돌아 보는 게 먼저 아닐까 싶다. 복지재정 확충이나 수급자 전달체계 강화, 차상위층 지원 확대 등을 위한 구체안을 함께 내놓았더라면 반응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세심하지 못한 복지 정책은 자칫 소외 계층을 낭떠러지로 떠미는 큰 과오를 범할 수 있어 위험하다. 이제라도 행정위주가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복지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사회부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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