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의료관광 25만명, 미용ㆍ성형 중국인만 5만6000명
"수술비 90%는 브로커 몫" 수수료 좇아 환자 몰고 다녀
요즘 우리 성형외과계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밀려드는 외국인 환자들로 병원들은 날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성형브로커들이 외국인 환자들을 쥐락펴락하면서 ‘병원이 을(乙)로 전락했다’는 자조와 한탄이 터져 나오고 있다. 브로커들이 높은 수수료를 좇아 외국인 환자들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몰고 다니는 ‘갑(甲)질’을 일삼는 데도 이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환자가 1,000만원 주고 수술 받으면 900만원은 브로커 몫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국내에서 의료관광은 첨단 의료서비스와 관광이 융합된 고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의료관광객 수는 해마다 36.9%씩 늘어 지난해 모두 25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유커(중국인 관광객) 발길은 더 드라마틱하다. 국내에서 미용ㆍ성형 시술을 받은 중국인은 해마다 97.5%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5만6,000명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수치에 고무된 정부는 급기야 2020년 외국인 환자 100만명 유치라는 구체 목표를 내걸었다.
성형외과 의사들 모임인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차상면 회장을 만났다. 차 회장은 “불법브로커들로 혼탁해진 시장을 정화하지 못 한다면 외국인 환자 발길은 2~3년 내 끊길 것”이라고 했다. 차 회장은 “환자 안전은 눈 감은 채 잇속만 챙기는 브로커의 폐단이 너무 크다. 의료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현재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심각한 수위”라고 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성형브로커 수는 2,000명에 이른다는 비공식 집계가 있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수를 모르고 있다. 택시기사, 통역, 관광가이드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 환자를 받는 국내 성형외과의 90%가량이 불법브로커와 거래하고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형브로커들은 50%에서 최고 90%에 이르는 폭리 수수료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 성형브로커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브로커와 성형외과 병원의 관계가 역전됐다. 이에 따라 브로커들의 갑(甲)질도 극심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브로커들은 A 병원으로 환자들을 대거 데려 왔다 B 병원이 더 높은 수수료를 제시하면 “내가 아는 다른 병원에 가면 더 싼값에 수술 받을 수 있다”고 꾀어 외국인 환자들을 그쪽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자본이 중국인 원정 성형을 겨냥해 설립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도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 회장은 “중국인 환자들은 우리가 100만원짜리 수술을 1,000만원짜리로 튀겼다고 생각한다. 한국 이미지만 나빠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지난 2009년 의료법을 개정해 외국인 환자 유치행위를 허용하고, 유치업을 등록제로 바꿔 양성화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악수(惡手)였다는 게 차 회장 판단이다. 차 회장은 “등록업체들조차 적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차 회장은 “불법브로커들로 시장이 이렇게 혼탁한 데도 단 한 명이라도 잡은 적 있나”라고 정부를 다그쳤다.
차 회장은 지금이라도 브로커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차 회장은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중국 환자들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 올 수 있다. 의료는 (쇼핑하는) 물건이 아니다.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성형브로커가 판치면서 고율 수수료, 의료사고 등 문제가 잇따르자 중국 미용 관련 단체 등은 최근 한국 측에 성형외과 병원과 의사에 대한 인증까지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오는 5월 중국 미용 관련 단체 등과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포럼을 열어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지난 2월 외국인 성형 환자들에서 의료사고가 잇따르자 수술실명제 도입, CCTV 자율설치 등 외국인 수술환자 권리 보호와 안전 강화를 위한 의료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차 회장은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성형외과 의사들은 찬성 입장이라고 했다.
차 회장은 특히 섀도닥터(유령의사)는 환자 안전에 커다란 위협이기 때문에 수술실명제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했다. 차 회장은 “의사는 수술하기 전 상담을 통해 환자 얼굴 표정도 보고 만져도 보고 수술 계획을 세운다. 쌍꺼풀수술만 해도 환자가 눈 떴을 때 근육이 어디에 뭉치는지를 봐 라인 잡는다”며 “그런데 환자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의사가 갑자기 수술실에 들어와 마취 상태로 눈 감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수술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브로커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관광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환자에 대한 부가세 환급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차 회장은 강조했다. 차 회장은 “1,000만원짜리 수술을 하면 900만원을 브로커가 가져가기 때문에 병원은 세금 신고를 못하고 탈세로 흐른다”며 “수술 환자들에게 99만원의 부가세를 환급하게 되면 병원은 이를 신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브로커는 아무리 단속해도 계속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차 회장은 “정부는 부가세를 환급하게 되면 돈이 국외로 빠져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쇼핑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공항에서 돌려 받은 환급금을 면세점 쇼핑에 쓰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차 회장은 “불법브로커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요커 발길은 2~3년 내 끊길 것”이라고 했다. 차 회장은 “지금은 한국이 성형기술에서 한결 낫지만 의료기술은 보편적인 것이라 중국이 금세 따라올 것”이라며 “국내 시장이 계속 혼탁한 상태라면 요커들이 한국으로 올 이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차 회장은 중국인 환자들의 의료사고가 그치지 않게 되면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요커 방한을 막을 것으로 예상한다. 차 회장은 “예전 중국 내 모든 병원에서 양악수술을 했는데, 사고가 잇따르자 최근에는 큰 병원만 하도록 법으로 틀어 막았다. 한국에서 자꾸 의료사고 날 경우 딱 끊을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라 했다. 차 회장은 “그래서 요즘 중국 환자들은 일본으로 간다”며 “시장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의료관광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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