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청렴의 미덕은 공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다.” 세계사를 망라하여 ‘뇌물의 역사’(1984년)를 쓴 미국판사, 존 누난의 주장이다. 근래 들어 정직의 덕목은 크게 손상되었다. 적어도 성적(性的) 부정직은 사생활의 자유, 프라이버시라는 도피처를 확보해 가고 있다. 그럴수록 나머지 한 기둥의 역할이 무겁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청렴만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공직자의 금과옥조다.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면서 공직은 명예만으로 맡지 않는다. 공공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을 보상할 물질적 대가가 주어져야만 한다. 1980년대 초 싱가포르 리콴유 정부의 사례를 연구한 적이 있다. 공무원의 뇌물죄를 사형, 무기징역에 처하는 등 강력한 통제를 통해 사회의 발전과 정화를 이루었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어떻게 그런 ‘조지 오웰’식의 통제가 가능하며, 그렇게나 엄혹한 통제를 통해 청렴사회를 이룬 성공의 비결이 무어냐고 파고들었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작은 도시국가이기에 가능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분히 철학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직시해야 한다는 답이었다. 한마디로 직장의 안정과 함께 적정한 보수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적인 권력을 쥐면 누구나 무슨 수단을 쓰든 생계비를 확보하게 마련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봉급과 연금으로 절대액수가 모자라면 누구나 뇌물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박봉의 공무원을 이끌고서는 청렴한 나라를 만들 묘책은 절대로 없다. 맹자 말씀대로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는 법이니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개혁과제’가 된 공무원연금제도도 탄생 당시에는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의 노후대책이라는 당근이기도 했다.
지난 3월 27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세칭 ‘김영란법’)이 공포되었다. 2012년 8월 16일 김영란 위원장의 지휘 아래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장시일에 걸친 논란 끝에 2015년 3월 5일 국회는 ‘사익추구’를 금지한 ‘이익출동’ 부분을 뺀 채로 법을 제정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변호사협회가 즉시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공무원이 아닌 사립학교와 언론사 임직원 등을 규제한 것은 평등권(헌법 제 11조) 위반이며, ‘부정청탁’의 개념이 모호하여 죄형법정주의(제12조)에 어긋나며, 배우자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은 ‘양심의 자유’(제19조)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일반의 상식과 정의감과는 거리가 있지만 법리 논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변협이 앞장선 것은 실로 이례적이다. 일부 ‘원로’변호사들은 ‘잘못된’ 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고, 법이 공표되기도 전에 즉시 개정해야 한다며 목청을 돋운다. 변호사 90%가 상위 10% 국민을 대변한다는 통념을 재확인시키는 듯하다.
언론과 사립학교의 임직원도 국민의 관점에서 볼 때 공무원과 진배없이 공적 일을 하고 생계형 부패를 변명으로 내세울 수 없을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15개 세부항목으로 상세하게(법 5조) 규정한 ‘청탁행위’의 개념이 ‘모호’하다면 그건 법률용어 자체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배우자의 범죄와 부패에 ‘양심’을 방패로 내세우는 것도 어쩐지 찜찜하다.
어쨌든 2016년 10월부터 김영란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법신(法神)이 된다. 그 여신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아니면 상처만 낼 것인가, 이 모든 것이 헌법재판소의 손에 달려있다. 헌재는 30일간의 사전심사를 거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앞으로 1년 반 동안 치열한 법리와 상식, 국민정서와 이해집단의 토론과 쟁투가 벌어질 것이다. 선진사회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의 민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법의 내용이 옳은가, 둘째 법 규정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 것인가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오래된 경구가 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법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세속의 법은 시장의 원리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법이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사회통념이 뒷받침해주어야만 한다.
현행의 법도 결코 부패행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형법은 공무원의 수뢰는 뇌물죄로, 사인의 부정청탁은 배임수재죄로 다스린다. 그러나 직접적인 직무상의 대가관계를 요구한다. 대가관계가 없는 선물은 무한정 허용된다. 그러나 ‘선물’과 뇌물의 구분이 모호하다. 엄밀하게 따지만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과도한 선물은 잠정적 뇌물이라는 것이 이 법의 근본 취지다. 법이 시행되면 드러난 직무대가성이 없는 1회 100만원, 연 300만원 이상의 선물도 처벌 대상이 된다(8조). 그렇게 되면 무엇이 문제며 누가 불편해지는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이 법을 반대하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검찰 경찰이 정치적 동기에 따라 ‘표적수사’할 위험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런 위험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이 법의 시행과는 무관하다. 설령 공권력의 남용이 일어나더라도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 버티고 있다.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를 끌어들여 논점을 흐리는 게 기득권자들의 장기다.
소비 축소로 인한 경기 침체의 우려를 내세우는 반대론자도 있는 듯하다. 실로 통탄할 일이다. 부패에 담합하는 물질만능 세태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서글픈 군상들이다. 국회의원 등 선거직을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시비 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의정치의 본질을 고려하면 납득할 여지도 있다.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규제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낙선으로 심판할 수 있다.
과도한 규제와 처벌을 담은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수준과 윤리 감각의 문제다. 국제사회가 평가하는 한국사회의 청렴도는 부끄러울 정도로 낮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4개중 27위이다. 우리가 걸핏하면 경멸하다시피 하는 ‘못사는 나라’들에도 한참 뒤진다. 이러고도 어떻게 선진국임을 자부하고 선진국 대우를 받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현재의 수준에 만족하느냐 아니면 더 맑은 사회로 도약하느냐, 국민은 선택해야 한다.
김영란법은 미래의 청렴 한국사회를 향한 이정표를 세웠다. 그 이정표를 현실에 작동하는 공적기제로 만드는 일, 그것은 국민의 몫이다. 이 법의 제정으로 우리 사회의 적폐인 금권(金權) 유착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범국민 캠페인이 벌어졌다.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 속에 발전한다.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설령 이 법이 소기의 목적을 일부만 이루어도 대한민국은 분명히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1년 6개월, 법의 시행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면서 국민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회가 잘라버린 절반인 ‘이익충돌’ 방지를 위한 법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덧붙여서, 장기적으로는 ‘로비스트’의 합법화와 규제도 의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엄청난 비리 혐의로 전직 해군참모총장 둘이 구속되었다. 앞으로도 줄줄이 오랏줄을 받을 거물들의 얼굴들을 미리 떠올리며 우울한 상념을 지울 수가 없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은 청렴한 선진국 꿈을 꿀 자격이 있는가?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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