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 직전이었다. 터미널에서 발권을 하고 도착 예정 시간을 알리려 시골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나서 목소리가 들렸다. 변성기에 막 들어선, 굵직하고 낮은 소년의 목소리. 일순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바로 직감했다. 이 녀석이 올해 몇 살이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이없어라. 이런 빙충맞은 어른이라니. 잠깐 동안 스스로를 힐난했다.
곧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왜 전화를 끊냐? 지금 오는겨?” 나는 대충 얼버무리면서 출발 시각을 알리고 냉큼 전화를 끊었다. 공연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중학교 2학년? 3학년? 명절 때가 아니라면 전화도 방문도 뜸한 무심한 삼촌을 녀석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조카의 얼굴과 목소리 따위를 떠올려 봐도 명확하게 짚이지 않았다. 그렇게 너댓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반년 사이에 좀 더 뚜렷해진 턱선과 콧날, 손바닥만큼 정도는 커버린 키. 이 ‘낯선 사내’ 옆에서 나는 갑자기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원래 없던 집안 어른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었다면 과장이겠지만, 장손 집의 장손주라면 서열 상 내가 더 아랫사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나란히 병풍 뒤의 조상들에게 절을 했다. 음복 후 조카에게 술 한잔 따르고 싶었다. 조상들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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